오늘 드디어 <장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욕심은 많았으나 많은 것을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저의 한계인 것을.
가장 좋은 것은 직접 <장자>를 읽는 것입니다. 누구의 말을 덧붙일 것도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생각할 거리가 무궁무진한 것이 <장자>입니다.
정리해볼까요. 지금까지 <장자>를 소통과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너를 만날 때, 이곳을 떠나 다른 공동체로 들어갈 때, 마음속에 이미 고정되어 굳은 마음, 곧 성심|成心|을 비워야 한다는 것이 소통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장자는 적극적인 소통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장자는 도|道|를 이미 고정된 그 무엇을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도는 걸어가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에서 도의 실천적인 의미를 찾았습니다. 문혜군의 주방장 포정이 소의 각을 뜨는 신기|神技|도 결국은 포정이 정성을 다하여 이루었던 또 하나의 도였음을 알았습니다. 장자가 생각한 도는 북극의 바닷속 물고기 곤이 붕새가 되어 하늘 높이 훨훨 날아 한 번에 구만리나 날아갈 정도의 큰 자유의 사상이었습니다. 범인이 생각할 수 없는 초월의 사상을 가진 철학자였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깨달음을 얻은 장자는, 그러나 말로 표현하기 위해 우언, 중언, 치언이라는 절묘한 표현 방법을 통해 수천 년이 지나도록 널리 읽히는 고전을 남겼습니다.
이렇듯 저는 그동안 관념적이고 속세의 사상과는 무관하다고들 생각했던 장자를 그 누구보다 현실적인 인물임을 부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공자나 맹자의 유가, 상앙과 한비자와 같은 법가, 심지어는 같은 노장사상의 원조인 노자의 사상보다 더 관념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그는 ‘소통’을 말하고 있지만 관념 속의 소통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천’을 말하지만 현실을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의미의 실천이 아니라 나를 현실에 맞추는 처세의 실천일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장자의 사상은 일반 백성들에게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권력에 봉사하기도 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최대의 공헌은 현재의 자본주의를 ‘과도기’라고 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인류 역사 발전의 종착점으로 볼 때 마르크스는 이 사회 이후의 어떤 사회가 또 있을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상식’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비록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이 휴지처럼 구겨진 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 같아도 자본주의의 폐해와 모순이 있는 곳 어디서든지 마르크스의 싹은 트고 있습니다. 장자 역시 ‘상식’에 반기를 든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당시 유가와 법가의 사상이 ‘상식’의 사상이었다면 장자는 그것을 초월하고자 한 인물이었습니다.
장자가 태어나 살았던 곳은 송나라였습니다. 상나라 유민들이 세운 아주 작은 나라였습니다. 전국시대에 약소국에 살면서 가혹한 현실을 직접 목격했을 것입니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 강자가 아닌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국시대는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군사적 힘이 경제적 힘으로 대치되었을 뿐, 여전히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장자는 고통 받는 개인들의 자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장자>는 그 자유의 최고의 상태, 즉 아무 것에도 기대지 않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그런 상태를 이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운명을 편안하게 받아들인 상태라야 가능합니다. 마치 나약하고 패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장자는 단 한 순간도 현실을 떠나버릴 것을 종용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을 받아들이되 약자로서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으려 했습니다.
부처가 태어나서 ‘천상천아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지어낸 얘기겠죠. 인간 싯달타가 신격화되면서 만들어진 얘기겠죠. 그러나 그 의미는 되새겨볼 만합니다. 카스트 제도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사회적으로 결정된 당시의 사회에 무시무시한 반기를 든 것이죠. 사회적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 것입니다. 사회적 구속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의 ‘개인’으로서 홀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개인 해방의 선언이었습니다.
<장자>에 등장하는 면면들도 모두 약자요, 무지렁이 개인입니다. 물고기가 붕새가 되고, 소 잡는 백정이 임금에게 도를 가르치고, 발 잘린 불구자가 공자를 가르칩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쓸모없는 나무가 실은 가장 유용한 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자에 대한 약자, 거대한 사회에 속박되어 있는 개인을 위한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부처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현실과의 인연을 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원문에서 이를 ‘부득이|不得已|’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부득이한 현실을 받아들이되 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 약자와 개인을 위한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관념 속의 자유라는 한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란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그 자체로 최고의 가치입니다.
장자의 사상이 우리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장자>에서 나타난 자유를 향해 비상하려는 호탕한 기운과 이미 굳어버린 생각을 깨트리는 초월의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어차피 우리시대의 대안은 우리가 만들어야하는 것이니까요.
끝.
■ 동양고전 다음 편 주제는 <주역>입니다. 동양고전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