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대학 때 자주 들었던 노래 중에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가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조금 길지만 가사를 그대로 옮깁니다. 괄호 속의 가사는 김민기의 나레이션입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겨울 한 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 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 모를 어둠 못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차디찬 세상 더는 못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우리 구원하실 그 분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이 새벽, 김민기의 노래를 찾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또 아려오면서 최근 이랜드 사태와 오버랩됩니다.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 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이 노래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1971년 천주교 원주교구에서 가톨릭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부정부패 규탄대회’가 열리고, 김지하가 초안한 선언문이 낭독되었습니다. 그후 서울 지역에 위수령이 발동되고 김지하는 수배되죠. 이 즈음해서 김지하는 종교적 실천적 문제를 제기한 희곡 “금관의 예수”를 씁니다. 이 희곡을 바탕으로 하여 1972년에 연극 “금관의 예수”가 상연되었는데 이 연극을 본 김민기가 버스 안에서 작곡을 했다고도 하고, 1973년 전국 순회 공연 때 첫 공연지인 원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작곡했다고도 합니다.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의 저자는 이 책을 쓴 동기를 밝히는 글에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제5장 제22절의 <대심문관>이야기와 더불어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서구의 신학이 예수의 삶이 지니는 변혁성과 급진성을 탈색시킴으로써 그의 가르침과 실천을 내면적이고 관념적인 신화적 기호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는 사실을, 김지하의 <금관의 예수>를 통해 대학 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   목 :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지은이 : 정승우
   펴낸곳 : 책세상 / 2005.1.15 초판 발행 / 초판 1쇄 읽음 / ₩5,900


신학 박사인 저자가 그때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 ‘문제적 인물’로서의 예수를 찾는 시도의 결과가 이 책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신화의 대상으로 주술화되고 우리의 욕망을 보장하는 부적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건전한 시도이자 예수에 대한 고정관점을 조금이나마 흔드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기록이 <신약성서>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있다고 해도 매우 단편적인 기록들 뿐입니다. <신약성서>에 포함된 정경(正經,canon=공식)복음서는 초대 교회에서 유통되던 많은 복음서들 중에서 교회의 심사를 거쳐 교회의 책으로 채택된 것입니다. 현대적 의미로 볼 때 객관적 역사적 보고서가 아니라,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의 도전에 직면해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영지주의 문서들은 정경복음서의 예수와 달리 죄와 회개에 대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허상과 깨달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는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영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는 인도자로서 온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육체적 부활의 교리가 부여해주는 베드로의 계승자라는 위계를 통해 독점적 지도력을 행했던 사도계 교회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대응책의 결과가 바로 현재의 <신양성서>입니다.

마가나 요한 기자가 작성한 <마가복음>, <요한복음> 등은 예수에 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전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신학적 구도 속에서 예수를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예수는 부활절 이후 원시 기독교 공동체들이 남긴 예수에 관한 구전 전승과 기억들을 토대로 각자의 신앙 공동체의 요구와 역사적·사회적 경험에 맞게 재구성한 예수입니다. 따라서 복음서의 예수 기억술은 ‘부활’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인 것입니다.

이 책은 <신양성서>에 포함된 정경복음서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역사적 예수’를 찾기 위한 여러 시도들을 담고 있습니다. 정경에 반해 이단으로 치부되는 ‘외경(外經)복음서’의 사료적 가치도 인정합니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를 재구성해보고, 역사적 예수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무엇이 과연 예수를 죽였는지 묻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시대와 정직하게 대결하며 하느님의 나라라는 대안적 세상을 꿈꾸었던 갈릴리의 방랑 설교가 나사렛 예수의 변혁적 실천과 신앙을 그가 살았던 역사와 사회적 배경에 기초해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신학의 거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진지한 기독교인들에게 자신들의 신앙의 뿌리가 ‘그리스도의 신화’에 근거하지 않고 역사적 예수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절 이후의 예수의 ‘빈 무덤’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2,000년 전 갈릴리의 민중들과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던 나사렛 예수의 신앙과 실천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자신의 시대와 치열하게 대결한 나사렛 예수의 삶과 실천을 통해 오늘의 안락한 중산층 기독교도들의 값싼 은혜를 반성하게 만드는 시도입니다.


* 이랜드그룹 계열사인 ‘이랜드 월드’ 김영수 사장 명의로 된 e메일 내용입니다.

이랜드 그룹 홍보실 김용범 과장은 “조사결과 김영수 사장은 그런 메일을 보낸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누군가 사측을 음해하기 위해 사장의 e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도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과장은 또 “회사 법무팀을 통해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확인 결과 이날까지 e메일과 관련해 이랜드로부터 수사 의뢰가 들어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07.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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