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게재일 : 2006년 1월 13일 금요일

[가로 열쇠]
-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진중에서 적은 일기. <칼의 노래>의 해전은 ○○○○를 따랐다.
- 조선 시대에 왕명을 받들어 죄인을 추국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 <칼의 노래>는 이순신이 ○○○에서 풀려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 배를 타고 바다에서 싸우던 군대. 지금의 해군에 해당함.
- 큰 몸뚱이. 현충사에 보관된 이순신의 장검은 198cm에 이른다. 엄청난 ○○가 아니면 들 수조차 없다. 그러나 전투에서 쓰이지는 않았다.
- 조선 제14대 왕. 재위 41년간의 태반을 당쟁과 미증유의 전란에 시달렸다. <칼의 노래>는 이 시기에 발생한 일본의 침략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 임진왜란에 이은 1597년 왜의 2차 침략전쟁.
- 한강의 제1지류. 수상교통의 요지. 예로부터 신라,백제,고구려의 국경으로 분쟁이 잦았던 지역.
- 학이 양 날개를 펴듯이 치는 수중 함대 전술. 이순신이 한산대첩 때 이 진형으로 왜선을 격파했다.
- 굽히지 않는 주장. 1587년 일본이 통신사의 파견을 요청했지만 공주교수 조언 등이 일본 정벌의 ○○○을 주장함에 따라 통신사 파견을 거절하였다.
- 조선시대 국왕에게 옳지 못한 일을 고치도록 말하거나 논박하던 관청. 경인년에 이순신에 대한 인사발령은 극심한 파행을 보였다. 세 번씩이나 임명 또는 승진되었으나 ○○○의 반대로 모두 취소됐다.
- 군대의 식량으로 쓰는 쌀. 한산대첩은 비록 국지전이었으나 적들의 ○○○ 이동 보급로와 퇴로를 막아버려 반격의 교두보를 마련한 전투였다.
- 충무공의 시. “○○○ 달 밝은 밤 / 수루에 홀로 앉아 / 긴 칼 허리에 차고 / 시름에 젖어들 적에 / 멀리 청호각 소리 / 남의 애를 끓나니”
[세로 열쇠]
- 재난을 피하여 있는 곳을 옮김. 선조 때 극심한 왜구의 침략으로 백성들 뿐만 아니라 임금까지 ○○을 떠났다.
- 이미 한 말을 자꾸 되풀이함. 이순신은 전투 중에도 일기를 남겼다. 그의 기록 정신은 치열하다. 그는 빠뜨리지 않았고, 그는 ○○○○하지 않았다.
- 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감. 이순신은 ○○○○하던 길에 모친상을 당했다.
- 묵은 관습이나 제도를 그대로 지키고 따름. 이순신은 개혁과 ○○, 훈구와 사림의 공존 못할 적대적 시기였던 을사년(1545년)에 태어났다.
- 이순신이 고안한 세계 최초의 돌격용 철갑선.
- 임금이 나라의 정치를 집행하던 곳. 조선 ○○에서는 남해안 지방에 왜구들이 자주 침략하자 비변사를 설치하여 이에 대비하였으나, 선조 때에 지배계급은 당파를 중심으로 분열하여 서로 반목질시하였다.
- 남을 꾀어냄. 적의 함대가 견내량과 안골포에 숨어 있자 이순신은 소수의 전선을 보내 적의 주력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해서 부수었다.
- 조선 선조 25년에 일본의 침략으로 비롯된 6년간의 전란. <칼의 노래>의 시대적 배경이다.
- 북쪽으로 나아감. 이순신의 활약으로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해상으로 ○○하여 육군과 합세하려던 왜군의 작전은 분쇄되었다.
- “전라도에 전해오는 민속놀이. 임진왜란 때 적의 군사에게 우리 군세의 많음을 보이기 위해 동네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 조선 중종 때 수구파가 조광조,김정 등의 신진 유학자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낸 사건. 기묘년에 일어났다. 이순신의 할아버지 백록도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
- 도와주는 군대. 이순신의 함대는 육지에 상륙하는 일이 드물었다. 육지에서의 ○○이 없었기 때문이다.
- 왜구의 노략질을 국가적 규모로 확대하여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출정군을 9개로 나누어 15만 8천 8백 명을 선두로 조선을 침략하게 하였다.
- 경상남도 남동단에 있는 광역시. 임진년 4월 13일 전쟁이 시작되어 단 하루만에 ○○이 함락되었다. 왜군은 계속 북상하고 임금은 서울을 버리고 의주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