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한 달여를 나의 가방 속에 자리잡고 있던 책입니다. 문고판이라 오며가며 쉽게 읽을 거라 생각했던 게 잘못입니다. 나의 책 읽는 습관이 ‘지금’ 꼭 필요한 것 같다거나, ‘지금’ 도움이 될만한 것에 정신이 집중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책을 집어들면 머릿속은 눈 앞의 책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를 휘젓고 다닙니다. 손에 든 책이 미안하리만치. 《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 이 거창한 제목의 책을 왜 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목에서 끌리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제 목 : 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
시리즈 : 책세상문고/우리시대 시리즈
지은이 : 장시복
펴낸곳 : 책세상 (초판 출간일 2004.4.25刊 초판 1쇄를 읽음) ₩5,900
저자는 <초국적기업>에 대한 정의로부터 말문을 틉니다. 흔히 말하는 ‘다국적(多國籍) ‘ 기업이라는 용어는 국적이 여럿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초국적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s)’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저자가 고안해낸 정의가 아니라 1978년부터 이미 사용되던 것입니다. 초국적기업이라 함은 ‘한 국가의 관심 등을 초월하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책의 앞 부분은 마치 마르크스 자본론 1권의 <상품과 화폐>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편을 압축해 놓은 듯합니다.. “교환 과정에서 이윤이 나오지 않고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불변 자본에서도 이윤이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 생산 과정에서의 노동력이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 자본가는 노동자의 재생산을 넘어서는 노동을 노동자에게 강요할 수 있다. 결국 이윤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 이상으로 노동을 하는 잉여 노동에서 발생한다.(p.32)” . 그런 다음 자본의 순환과 축적 과정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모든 것이 ‘초국적기업’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함인데, 그리하여 정의한 ‘초국적기업’이란,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본국의 기반을 바탕으로 자본 축적을 세계적 규모에서 수행하며, 이러한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과 조직을 갖고 있는 기업(p.41)”입니다.
초국적기업에 대한 정의를 내린 뒤, 저자는 초국적기업과 국민국가, 초국적 기구가 세운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대안에 이르기까지 그 논의를 확대해갑니다.
요컨데, 초국적기업의 세계적통제가 세계적인 저항을 만나 정당상을 상실하고 있으며 반세계화 운동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는 획기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의 그의 주장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소개한 적도 있지만, 토마스 프리드만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저자는 세계화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세계화의 부벙적인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미국의 자유주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이 주장과는 반대로, 《세계화 시대 초국적기업의 실체》의 저자 장시복은 “아직까지 초국적기업에 목부하는 세계적 통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충분하지 않”지만 “현재의 반세계화 운동이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좀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결실을 일구어 내”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달리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에른스트 블로흐의 다음 말을 인용하며 그의 바람을 대신합니다.
“문제는 희망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다른 세계’가 가능할 것이라 믿고 있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