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최저 승률 : 15승 65패
팀 최다 실점 : 20점(대 삼성, 두 차례)
시즌 특정 팀 상대 전패 : 16 전패(대 OB)
팀 최다 홈런 허용, 팀 최다 사구 허용, 최단 시간 9회 경기, 최장 시간 9회 경기, 단독 홈스틸 허용, 시즌 최다 실점 투수, 시즌 최다 자책점 투수, 시즌 최저 타율, 국내 첫 노히트 노런의 대상, 시즌 최다 병살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화려한 기록 중 일부(!)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너무나 특이하고, 아니, 그것보다는 뭔가 모를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 웃기는 제목의 소설이 제8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랍니다.
정말 웃기는 얘기입니다. 첫 장을 넘길 때부터 키득키득 웃겨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공이 나와 같은 또래이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프로야구 어린이 팬클럽 회원이 되었다는 것 등 나와 닮은 점이 많다는 것도 큰 몫을 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대구에서, 정말 대구에서, 해태 타이거즈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습니다. 빨간 잠바에 까만 모자. 아마 우리 형제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파란 잠바와 모자를 쓴 삼성 라이온즈 회원들이었을 겁니다. 해태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구 시민운동장에 세워 둔 해태의 버스가 넘어지거나 심지어 불타버렸던 그 시절에 말입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듯 너무나 생생하게 그리고 너무나 빠르게 그렇게 몰입되었습니다.
각설하고…
이 글에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진정한(!) 야구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오로지 삼미만이 달성할 수 있었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합니다.
- 요는 말이지. 어쩌다 프로가 되었나, 라는 것이야. 생각해봐, 우리는 원래 프로가 아니었어. 그런데 갑자기 모두 프로가 된 거야. 그 과정을 생각해보란 말이야. 물론 프로야구가 세상을 바꾸었단 얘기가 아냐. 요는, 프로야구를 통해 우리가 분명 속았다는 것이지.
속아?
그럼, 전부 속았던 거야. ‘어린이에게 꿈을! 젊은이에게 낭만을!’이란 구호는 사실 ‘어린이에겐 경쟁을! 젊은이에겐 더 많은 일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보면 돼. 우리도 마찬가지였지. 참으로 운 좋게 삼미 슈퍼스타즈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우리의 삶은 구원받지 못했을 거야.
(…)
너도 분명 기억하지? 82년 2월 7일 최초로 스프링 캠프 훈련을 실시하러 떠나던 삼미 슈퍼스타즈를 말이야. 6개 구단 중 유일하게, 삼미는 선수 전원이 정장을 차려입고 버스에 올랐던 것을. 생각해봐. 유니폼을 입고 버스에 올랐던 나머지 구단들의 목표는 뭐였지?
우승.
맞았어. 그게 그들의 한결같은 목표였지. 하지만 삼미의 목표는 다른 거였어. 기억나?
글쎄.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
(…)
한미 정상 외교의 뒷거래?
그래, 뉴스에 발표된 건 표면, 즉 껍데기에 불과해. 실제로 그때 거래되었던 건 놀란스와 프로야구였으니까.
(…)
당시의 한국인들은 〈프로〉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고, 〈섹스〉라는 말은 차마 부끄러워서 입에 올리지도 못했거든. 그래서 놀란스와 프로야구가 건너온 거야. 선발대의 역할을 한 것이지. 놀란스가 와서 ‘섹시 뮤직’을 부르고, 프로야구가 ‘프로’의 전파를 담당하기로! 물론 놀란스가 ‘섹시 뮤직’을 부르면, 모든 방송사들이 일제히 쇼 프로그램이건 아침 프로그램이건 교양 프로그램이건 가리지 않고 “저기, ‘섹시(sexy)’는 영어의 섹스(sex)에서 파생된 말인데 미국에선 이 말이 나쁜 말이 아니란 걸 아시나요?”라고 남자 진행자가 운을 띄우면 “그럼요, 미국에서 ‘섹시’는 매력적이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이는 인사말이라면서요”라고 여자 진행자가 호들갑을 떨고, 그러면 다시 “XXX씨, 오늘 참 섹시해 보이십니다!”라고 남자 진행자가 너스레를 떨고, 다시 여자 진행자가 “이것 참 감사합니다”로 말하게끔 각본이 짜여 있었던 거지. 〈프로〉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었어.
(…)
하여간에 당시 정권은 이 세상을 〈프로화〉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부었어. 그리고 그걸 눈치 챈 유일한 존재가 삼미 슈퍼스타즈였지.
(…)
물론 놈들은 그때부터 삼미를 주목하고 있었지. 도대체 그런 시점에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을 목표로 내건다는 건 눈치가 없어도 여간 없었던 게 아니니까. 하지만 리그가 시작되기 전이었고, 또 조만간 눈치를 긁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냥 넘어갔던 거야. 물론 놈들은 삼미가 그렇게 세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지.
아마 알았더라면…
알았더라면?
프로야구가 시작되기 전까지 삼미 선수 전원을 삼청교육대에 집어넣었다 뺐을 거야.
(…)
차마 놈들도 5승 35패 승률 0.125의 후기 성적 앞에선 벌린 입을 오므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
결국 놈들은 삼미의 해체를 결심하기에 이르지. 모기업 삼미의 부도를 계획하고 나아가 신생 그룹이었던 청보를 협박해 슈퍼스타즈를 인수하게끔 만든거야. 결국 삼미는 이미 자신의 할 일을 모두 완수했고, 그 아름다웠던 플레이는 모두의 가슴 속에 남게 되었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도 그 말씀이 성경으로 모두에게 남아 있듯 말이야.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뭐야, 너무 쉽잖아?
틀렸어! 그건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야. 이 〈프로의 세계〉에서 가장 하기 힘든 〈야구〉인 것이지.
믿거나 말거나한 이 얘기는, p.242~252에 나오는, 조성훈이 주인공에게 해주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역설하는 부분입니다.
얼마 후 그들은 10명으로 된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만듭니다. 마지막 팬클럽을…
그 자리에서 조성훈은 또 역설합니다.
“이제 그 누구도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야구의 의미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유는……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p.270)
이 책은, 마치 삼미와 같은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하잘 것 없는 인생’에 대한 경쾌하고 속시원한 얘기입니다.
프로가 아님에도 프로인 것처럼 가장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시간이 철철 넘쳐 남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을 위해,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박민규라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 작가의 힘은, 개그 대본같이 웃기는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경쾌한 문체로 말입니다. (믿기 어려우시다면 직접 한번 읽어보세요~)
참고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후예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나, 어쨋든 인천을 연고로 한 현대 유니콘스는 1998년 대망의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연고를 “서울”로 옮깁니다. 이것도 프로 세계의 법칙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연고가 서울로 제대로 옮겨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서울로 옮기는 게 어려워 수원으로 했다는 얘기도 있고.. 지금 인천을 연고로 한 건 SK인 것 같기도 하고…사실 전 요즘 프로야구 정말 관심없습니다 ^^ 제 머리 속에 남아있는 최고의 타자는 ‘김봉연’입니다. 아, 이만수도 있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