봤던 책을 또 보는 아이

읽기 능력은 본능이 아니다, 훈련해야 한다

아이들의 읽기능력이 때가 되면 자연스레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우리 아이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야, 그만 놀고 책 좀 봐라.’라고 한다고 정말 책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만화책 그만 보고 책 좀 봐. 자꾸 만화책만 보면, 만화책 다 버린다!’ 이런 협박만으로 정말 책 잘 읽는 아이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읽기능력은 매우 고차원적인 능력입니다. 말하기 듣기와 같이 언어 본능에 포함된 능력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능력이 아닙니다. 읽기 연습량에 따라 읽기능력은 그야말로 개인차가 심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중학교 수준의 독해능력을 가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어른들 중에도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누군가 설명해 주면 이해하는데, 책을 봐서는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아직 훈련이 덜 된 까닭입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매우 쉬운 내용의 책도 아이에게는 고문(古文)처럼 난해할 수 있습니다. 쉬운 책을 제대로 독해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야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도움이라는 게 실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다음에 설명 드리겠지만, 전문적인 독서지도를 받거나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주 조그만 노력이 우리 아이를 책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 수 있습니다.

봤던 책을 보고 또 보는 아이

아이들은 왜 봤던 책을 보고 또 보고 또 볼까요? 강연 때 이런 질문을 드리면 대개 ‘재미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오늘 읽은 재미있는 책을 내일 또 읽나요? 아닐 겁니다.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봤던 책을 다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책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봤던 책을 연달아 보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그건 왜 그럴까요?

10년 전 읽었던 <어린왕자>를 다시 읽으면 어떻습니까? 새롭습니다. 분명히 내용은 그대로인데 느낌이 다릅니다. 글자는 그대로이지만 내 마음에 전해지는 감동이 다릅니다. 똑같은 글이 달리 읽히는 것은 그 사이 나의 ‘스키마(배경지식)’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경험’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독해는 단순히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해는 문장을 내 머리에서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장이 내 몸속에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복합적인 작동입니다. 그런데 독해력을 어느 정도 갖춘 어른들은 한 번 읽은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읽어봐도 똑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시 읽지 않습니다.

반면 아이들은 재미있는 책을 다시 읽습니다. 읽다보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어른들은 10년 정도 지나야 예전에 읽었던 책이 다르게 다가오는 데 반해, 아이들은 매일 매일 새롭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반복하여 책 읽기를 오히려 장려해야 합니다. “정말 재밌는 책인가 보구나.”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며, 아이가 더 좋아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책이 온전히 아이에게 녹아듭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그러하지 않습니다. “그 책 또 보니? 만날 그 책만 보니? 다른 책 읽으면 안 되겠니?” 다른 책 읽기를 유도합니다. 봤던 책을 또 보는 것은 독해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되고, 지식을 쌓는 데도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말씀 드리겠지만, 이런 아이들의 행동은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칭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많이 읽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대상에 깊이 빠져 심취하는 것도 그것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수많은 얕은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라도 쓸 수 있는, 즉 활용 가능한 지식입니다. 후에 공부 얘기할 때 자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완전히 내 것이 되지 않은 지식은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내 PC에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골라 쓸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면 죽은 지식입니다.

봤던 책을 또 보는 까닭은 아직 새로움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 새로움이 다할 때까지 아이가 반복하여 읽는 것을 애써 막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책은 가볍게 스치듯 지나가지만 또 어떤 책은 가슴 깊은 곳에 크게 자리 잡기도 합니다. 아마 우리 아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그러한 책인 것 같습니다. 엄마가 보기에는 시시하고 별 내용 없더라도, 아이는 지금 진심으로 느끼고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정독습관, 독해력을 키우는 방법,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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