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책 제목 참 멋있지 않은가?
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다, 이러면 밋밋하다. “미쳐야 미친다” 같은 말인데 이렇게 어감이 다를 수 없다. 이런 것이야말로 ‘지극한 문장’이 아니겠는가.
지극한 문장이란 무엇인가? 저자 정민 선생은 홍길주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겉보기에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글들은 겉보기에도 대동소이하고, 찬찬히 살펴보면 더 똑같다. 이것이 천하의 지극한 문장과 일반의 저열한 문장을 구별짓는 가장 큰 차이다.”(p.295)


   제   목 : 미쳐야 미친다
   부   제 :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푸른역사 (초판 출간일 2004.4.3 / 2004.7.25일刊 초판 13쇄를 읽음) ₩11,900


책 제목부터 참 심상찮은, 참 맛깔나는 책이다. 오며 가며 편하게 읽기에 적당하다. 좀 아쉽다면, 제목이 워낙 강렬하여 그 내용이 다소 죽는다는 느낌이 든다. 책 전체가 조선 시대 벽(癖)에 들린 사람 – 요즘 말로 ‘마니아’들의 이야기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 얘기는 이 책 전체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3분의 2는 허균과 정약용, 박지원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재미로 읽어봄직한 얘기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은 듯하다. 내가 보고 있는 책이 벌써 열 세 번째 찍은 책이다. 출간한 지 세 달 만에 13쇄면, 누가 뭐래도 대중적인 흡입력이 있는 책이다.
먼저 읽은 사람들 중에 ‘기대’보다 못하다, 제목보고 책 사면 후회한다는 둥의 말을 하는 이가 있다. 그들의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글 한 줄 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책 제목만 보고 고르는 것도 경계해야겠지만 남들의 말만 듣고 책 사기를 주저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할 일이다. 아주 허튼 책이 아닌다면서야 책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식과 감동을 얻느냐는 순전히 읽는 이의 몫이다. 정민 선생이나 그가 소개한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내공이 만만치 않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꽃에 미친 김덕형 – 이 사람은 시간만 나면 꽃을 그렸다.
표구에 미친 방효랑 – 아무리 낡아 헐어진 옛 그림도 그의 손을 한 번 거치면 아연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돌만 보면 벼루를 깍았던 정철조 – 그의 호가 석치(石癡), 즉 ‘돌 멍청이’다. 이 글을 읽고 나의 호를 열치(熱癡)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열정 + 치’라는 뜻으로 했는데, 발음이 꼭 멸치같아서 이내 포기했다.
독보적인 천문학자 김영 – 독학으로 신수(神授)의 경지까지 올랐으나 결국 굶어 죽는 불운한 인생을 보냈다.
독서광 김득신 – 얼마 전 칼럼 형식을 빌어 소개드린 적이 있다. 백이전을 11만 3천 번, 노자전을 비롯해 1만번 이상 읽은 것만 36편이나 되는, 정말 미친 사람이다. 그러나 아이큐가 두 자리 수를 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추측이다. 그의 여러 일화를 보면 저자의 말에 믿음이 간다.
역시 책만 읽은 바보 이덕무 – 결국 나이 서른 아홉이 되어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벼슬길에 오른다. 그런 그를 정조가 무척 아꼈다는 얘기가 있다.
박제가와 서문장 – 박제가는 조선의 사람이고 서문장은 명말청초 사람이다. 둘 다 그 능력에 비해 세상에서 알아 주는 이 없이 쓸쓸히 살다 갔다.
과거 시험만 보면 급제 했던 노긍 – 그러나 몰락한 잔반에게 벼슬길 주어지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살다 갔다.
이상이 1부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2부와 3부에는 허균과 화가 이정, 기생 계량, 권필과 송희갑, 정약용과 제자 황상, 홍대용과 그의 벗들, 박지원, 이옥, 이덕무, 홍길주, 허균에 관한 여러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군데군데 듬성듬성 읽은 부분도 있지만 과거로의 유쾌한 여행이었다. 책을 덮고 나니, 오로지 더 치열하고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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