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연재를 마치며

한 달을 넘게 독서노트를 쉬었습니다.
여러 일들이 겹쳐 일어나고 몸이 힘들어 감히 쓰지 못했습니다.
몸을 추스리고 생활을 바로잡아 다시 정상의 리듬을 찾으려 합니다.

이미 한 달 넘게 전에 끝낸 동양고전 연재에 대한 소감을 뒤늦게 적어보았습니다.

열정

저는 전염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병이 남에게 옮는 것만 전염이 아닙니다. 버릇이나 태도, 풍속 따위가 옮아 물이 드는 것도 전염이라 합니다.
저는 열정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전념할 때의 마음입니다. 생동생동한 삶은 열정이 있을 때라야 가능합니다.
한때 ‘열정 연구소’라는 것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불쑥 찾아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열정을 붙들어 매고 싶었습니다. 그 비법을 알아내어 나 스스로 열정의 화신이 되어 그 바이러스를 널리 전염시키고 싶었습니다.
열정은 자극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놀랍게도 까마득히 오래된 <사기>, <논어>, <맹자>에서 평생 동안 열정을 불사르고도 남을 자극을 받았습니다. 치욕의 삶 속에서도 인류 최고의 역사서를 만들어 낸 사마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평생 동안 천하를 주유한 공자, 한물 간 유가의 가르침을 생동감 있는 필체로 엮어낸 맹자, 그들이 만들어낸 열정의 기록이 바로 <사기>,<논어>,<맹자>입니다.

곰삭은 것

오래된 것과 낡은 것은 다릅니다. 낡았다는 말은 오래되어 헐고 너절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두 너절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것과 곰삭은 것은 다릅니다. 풋내 나는 것이 사라지고 맛이 제대로 익어야 곰삭았다고 말합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모두 곰삭지는 않습니다.
고전에는 오래되었지만 곰삭은 지혜가 있습니다. 이솝도 울고 갈 <장자>의 우화에는 가슴이 후련해지고 머리를 후려치는 지혜가 있습니다. 문자도 없던 아득한 옛날에 점을 쳤던 기록인 <주역>에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세상과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학문사

그러나 고전을 읽는다고 모두 열정이 생기고 지혜가 무르익지는 않습니다. 고전이 곰삭은 것이지 내 사고의 깊이가 곰삭지 아니했고, 고전 속에 지혜가 녹아있지 내 삶이 그 지혜를 본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고, 맹자는 선을 지키고 악을 멀리하기 위해 ‘새벽녘의 고요한 마음|平旦之氣|’을 지키라 하고, 장자는 도를 구하기 위해 마음을 굶기라 했습니다. 지혜를 얻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아직 마음을 굶기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도|道|와 죽음을 맞바꿀 정도의 각오를 다지지 못했습니다. 다만 <중용>에 나오는 다음의 말을 젊은 날의 수행의 화두로 삼을까 합니다.

    넓게 배우고, 상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라
    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저는 이 말을 ‘학문사|學問思|’로 줄여 부릅니다. ‘배우고 묻고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이 연재도 저의 학문사 과정의 하나입니다. 스스로 배우고 묻고 생각하던 바를 옮겨 놓았습니다. 그러니 아직 풋내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채운 곳보다 여백이 더 큽니다. 잘못 채운 곳을 가려내고 여백을 채우는 것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의 과제로 돌립니다.

술이부작

공자는 <논어>에서 “나는 옛것을 배워 전하기만 할 뿐 창작하지는 않았고, 옛것을 믿고 좋아하면서 내 자신을 은연중에 은나라 현인인 노팽과 비교해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술이부작하자는 것이 이 글을 쓸 때의 원칙이었습니다. 옛것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발견하고, 옛것에서 평생을 두고 곱씹을 화두를 발견하였으니, 저의 역할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무뚝뚝한 고전을 조금이라도 편하고 쉬운 말로 풀이하려 욕심을 좀 부려본 것뿐입니다. 부디 이 글로 인해 동양고전의 살아있는 열정과 지혜가 조금이나마 전달되길 바랄 뿐입니다.

이 연재를 쓰면서 도움을 받은 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풍우란, <중국철학사>, 형설출판사 (전체 공통)
  • 박일봉, <중국사상사>, 육문사
  • 알프레드 포르케, <중국고대철학사>, 소명출판
  • 송영배, <중국사회사상사>, 사회평론
  • 송영배, <제자백가의 사상>, 현음사
  • 장기균외, <중국철학사>, 일지사
  • 신영복, <강의>, 돌베개
  • 기세춘 <동양고전 산책 1, 2>, 바이북스
  • 나카지마 아츠시,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다섯수레
  • 김경일, <사서삼경을 읽다>, 바다출판사
  • 김진연 편역, <사기 1,2,3>, 서해문집
  • 사마천, <사기열전 상,중,하> 까치
  • 사마천, <사기본기>, 사회평론
  • 사마천, <사기세가 상,하>, 까치
  • 사마천, <사기표서․서>, 까치
  • 진순신, <중국의 역사 1>, 한길사
  • 풍국초, <중국상하오천년사 1>, 신원
  • 서연달외, <중국통사>, 청년사
  • 정재서, <이야기 동양신화>, 황금부엉이
  • 원가, <중국신화전설 I>, 민음사
  • 진현종, <여기 공자가 간다>, 갑인공방
  • 오성수, <오PD의 논어 오디세이 1084>, 어진소리
  • 최인호, <유림 2>, 열림원
  • 김경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바다출판사
  • 김용옥, <도올논어 1,2,3>, 통나무
  • 신정근,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심산
  • 홍사중, <나의 논어>, 이다미디어
  • 박이문, <논의어 논리>, 문학과지성사
  • 이기동, <논어강설>, 성균관대출판부
  • 하승우, <희망의 사회윤리 똘레랑스>, 책세상
  • 백민정, <맹자, 유학을 위한 철학적 변론>, 태학사
  • 김재욱, <맹자, 제멋대로 읽기>, 포럼
  • 이기동, <맹자강설>, 성균관대출판부
  • 양구오롱, <맹자평전>, 미다스북스
  • 강신주,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태학사
  • 오강남, <장자>, 현암사
  • 이강수, <노자와 장자>, 길
  • 모로하시 데쓰지, <장자이야기>, 사회평론
  • 로버트 앨린슨, <장자,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 그린비
  • 양재혁, <장자와 모택동의 변증법>, 이론과 실천
  • 허세욱, <장자>, 범우사
  • 김갑수, <장자와 문명>, 논형
  • 이현주, <이아무개의 장자 산책>, 삼인
  • 왕필, <周易 王弼注>, 길
  • 김석진, <대산 주역 강의 1~3>, 한길사
  • 노태준, <新譯 周易>, 홍신문화사
  • 강진원, <알기 쉬운 역의 원리>, 정신세계사
  • 서대원, <새로 풀어 다시 읽는 주역>, 이른아침
  • 장영동, <주역의 멋>, 우리문화사
  • 기세춘, <고을은 바뀌어도 우물은 바뀌지 않는다>, 화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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