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크리스마스는 심한 감기와 함께 보냈습니다. 코가 막히고 침을 삼키기 힘든데다 열병처럼 몸이 달아 올랐습니다. 다행히 약을 먹고 하루종일 누워 있으면서 자는 듯 깨는 듯한 비몽사몽의 경지를 헤매고 나니 저녁 무렵에는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읽다 만 책들 몇 권 보다가 또 잠이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잠을 잔 탓인지 중간중간 몇 번을 깼다가 새벽 두 시에 그냥 일어났습니다. 그런대로 몸이 괜찮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요.
오늘은 독서노트 500회 되는 날입니다. 2002년에 시험삼아 몇 편 써보다가,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0월입니다. 그로부터 약 4년 3개월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약간 쉬어 간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림잡아 셈해보니 한 달에 평균 10권 정도는 꾸준히 읽고 정리했습니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에도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가벼운 글쓰기의 유혹 ☞실용적 책 읽기, 실용적 글 쓰기)
2004년 5월에는 100권의 리뷰를 끝내고 가벼운 소회를 적은 적이 있었습니다. (☞100번째 리뷰를 끝내고)
남의 책을 빌어 내 생각을 조금 보태는, 비록 어정쩡한 글 쓰기이지만 우보천리(牛步千里)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실천하여, 2013년~2014년까지 1,200~1,500여 권의 책을 읽고 쓰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 어정쩡한 글 쓰기)
아직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쉬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출퇴근 길, 퇴근 후 TV 앞에서 보내는 시간, 아직 세상이 눈뜨지 않은 고요한 새벽시간, 이렇게 버려진 시간을 재활용하여 읽고 썼습니다. 고집스레 읽고 썼던 것은 훗날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매정하리만치 변해가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릅니다. ‘나의 글’을 쓰기 위해서도, 책 속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매일같이 나를 ‘수양’하고 싶습니다. 한 가정을 책임지고 고도화된 자본주의를 살아가야 하는, 세속의 유혹을 완전히 떨칠 수 없는 상태라면, 그렇다면 ‘의미 있는 유혹’에 집착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노자처럼 삶에 초연할 날이 왔으면 좋겠지만 현실을 노자처럼 살고 싶지도, 살 수도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노자도 젊은 날 주나라에서 수장사(守藏史), 즉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국립도서관의 관장에 해당됩니다. 깨달음의 상당 부분이 책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책을 읽고 쓰는 것은 저를 갈고 닦는 수양이 될 수 있는, 그래서 ‘의미 있는 유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500회를 자축하면서 어떤 책을 선택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 책 읽기의 목적인 수양의 의미를 담은 책이었으면 좋을 것 같아 한 달 전쯤 법상 스님의 <금강경과 마음공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채 1/3도 읽지 못했습니다. 빨리 읽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리 읽혀지지도 않거니와 그리 속독한다고 해서 제가 얻을 게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틈날 때마다 천천히 읽어가며 그 뜻을 음미해야겠습니다. 이렇게 한 번이라도 마음을 다해 읽고 난 다음에 느낀 바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대신 오늘 소개 드릴 책은 <중국문명대시야>입니다. 중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 질(전 4권) 정도 소장할 만한 작품입니다. 제가 아직 1권밖에 읽지 못해, 1권을 중심으로 소개 드리겠습니다.
제 목 : 중국문명대시야 – 1권
지은이 : 베이징대학교 중국전통문화연구중심 / 장연,김호림 옮김
펴낸곳 : 김영사 / 2007.12.4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35,000원)
이 책은 탄생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1994년 베이징대 국가연구기관인 ‘중국전통문화연구중심(센터)’이 112명의 대표 석학을 초빙해서 4년간 역사, 자연, 생활, 사회, 예술 등 중국문화 각 분야에 대한 원고로 정리하게 했습니다. 이 원고를 바탕으로 중국 국영 CCTV가 150부작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1995년부터 국내외에 방영했습니다. 이후 추가 사진 촬영과 자료 수집을 통해 2,000여개의 도판을 마련했고 5년 간의 작업 끝에 2002년 <中華文明大視野>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게 됐습니다. 한글 번역본 작업도 내용의 방대함 때문에 번역·편집에만 2년을 소요했다고 합니다. 일단 내용을 차치물론해도 이 정도의 정성을 쏟은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책 전체는 염제와 황제로부터 시작하여 근대 5.4운동까지의 방대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1권은 중국의 신화에서부터 한나라 시대까지의 문명입니다. 기본적으로 역사를 다루고, 해당 시기의 인물, 문화, 철학, 지리, 문학 등을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다룬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을 순서 대로 읽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필요할 때 꺼내 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묵혀 뒀다가 꺼내 읽기에는 참 아깝습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처음부터 순서 대로 읽었는데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5,000년의 방대한 역사를 담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책 4권에 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5,000년 역사 중에서도 중국인들이 생각하기에 꼭 알아야 할 알짜만을 추려 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내용이 방대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본문 문장도 평이해서 결코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중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만 유독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읽다 보니 남의 나라 얘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아마 중국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우리 역사, 즉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 뿐만 아니라 열두 띠 이야기와 청명, 한식, 설날 풍속 등의 문화를 다룬 부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절기와 풍속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데, 우리에게 들어와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하며 읽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목적을 가지고 중국을 공부합니다. 중국을 알기 위한 방법은 많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문학, 여행기 등 중국에 관련된 책을 보거나 직접 중국을 다녀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 단시간에 가장 포괄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이 책보다 더 유용한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가히 중국에 관한 지상(紙上) 박물관이라 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