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인생

그제 오후에 밖에서 일을 보고 바로 퇴근했습니다. 일이 그렇게 길어질 줄 몰라서 회사에서 나올 때 미처 가방을 챙겨오지 못했습니다. 빈손으로 버스를 타자니 허전하여 근처 서점에 들렀습니다. 오랜만에 시집 한 권 사서 집에 가는 동안 읽어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눈에 띄는 시집이 없어, 대신 범우사 문고 2권을 사서 나왔습니다. 책꽂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문고판은 대개 이렇게 산 것들입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서점에 들렀다가 우발적으로 집어들고 나온 것들입니다. 이번에 산 것은 범우문고 242번 《독서와 인생》, 14번 《공자의 생애》 입니다. 각권 2,800원입니다. 책값이 거저나 다름 없습니다.

《독서와 인생》은 일본의 철학자 미키 기요시(1897~1945)의 책입니다. 생소한 이름의 미키 기요시는 독일에서 리케르트와 하이데거를 사사(師事)하고 도쿄 호세이 대학에서 철학과 교수로 있었습니다. 그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하려 시도했는데, 이로 인해 공산주의자 모임에서 축출되고, 공산당의 동조자라는 죄목으로 강단에서도 쫓겨났습니다. 훗날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지만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반대하고 치안유지법 위반 탈주자에게 밥 한 그릇과 옷 한 벌을 준 혐의로 일제에 의해 검거되어, 일제 패망 한 달 뒤인 1945년 9월에 영양실조와 급성신장염으로 구치소에서 사망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죽기 3년 전인 1942년 6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제   목 : 독서와 인생
   지은이 : 미키 기요시(三木淸) / 최현 옮김
   펴낸곳 : 범우사 / 2007.8.10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2,800원)


160쪽이 조금 넘는 적은 분량인데다가 수필이라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청춘>, <독서 편력>, <철학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철학은 쉽게 할 수 없는가>,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책의 윤리> 등 여섯 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 중 <철학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철학개론서는 한 권만 읽어보라고 합니다. 그것도 아무거나. 여러 권 읽는 것은 낭비이며 반드시 철학개론부터 시작할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철학에 대해 여러 지식을 쑤셔 넣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정신을 접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류 철학자가 쓴 책을 읽으라고 말합니다. 그는 책의 여러 부분에서 ‘해설서’보다는 ‘원전’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좋은 책은 원전이 오히려 쉬운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철학 공부의 깊이와 넓이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깊이라는 건 읽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깊이라는 건 학문 이상의 인간 수업에 의해 저절로 생기는 것이지 배운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뭔가 깊어 보이는 책이 현학적일 수 있다고 주의하라고 합니다. 대신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은 넓게 생각하라고 합니다. 넓게 보고 넓게 생각하는 것은 독단이나 편견에 반대해야 하는 철학의 기본조건이라고 합니다.

<철학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철학은 쉽게 할 수 없는가>에서 철학 입문자를 위한 많은 조언을 들었습니다. 철학 입문서를 아무리 여러 권 읽어도 철학의 문턱에도 들어서지 못했던 까닭을 알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어렵게 느껴 감히 읽어볼 시도도 하지 않은 원전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는 1930년대에 쓰여진 글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읽는다면 전혀 시대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마치 현대 작가가 쓴 신간처럼 ‘지금’의 문제로 받아들여집니다.

원래 짧은 글이지만 더 요약을 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독서 습관을 붙이는 일이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습관이 필요하다. 독서의 습관을 기르려면 여가 시간을 찾아내려고 애써야 한다. 인생에서 여가 시간을 찾아내려고 하면 어디에나 다 있다. 아침 출근 전의 반 시간, 잠자기 전의 한 시간, 독서를 위한 시간을 만들려고 하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독서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독서하지 않으려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독서 시간을 만들기 위해 쓸데없이 분주하기만 한 생활을 정리할 수 있다면 인생이 그만큼 풍부해질 것이다. 독서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이것만으로도 현대 생활에서 독서가 갖는 의의는 클 것이다.

독서는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날마다 예외 없이 일정한 시간에, 설사 30분이라도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20년 간이나 계속할 수 있으면 그럭저럭 하는 사이에 훌륭한 학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독서 습관은 독서를 위한 여가 시간을 만들어 낸다. 독서하기에 좋은 형편이 되었을 때 독서하려고 하면 끝내 독서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 기질에 적합한 독서법을 스스로 발명하지 못하면 오래, 즐겁게, 또 유익하게 독서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독서법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많이 읽어야 한다. 흔히 많은 책을 함부로 읽지 말고 한 권의 책을 되풀이해서 읽으라고 가르친다. 그건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노인이 자신의 과거 실수를 돌아보면서 뒤에 오는 사람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청년에게 주는 교훈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노인의 교훈을 충실히 지키기만 하는 청년은 진보적 독창적인 면이 부족할 것이다. 예로부터 같은 교훈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왔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다 있다. 사랑하고 헤어지면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안다고 평생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으라고 말하지만, 독서가 중에는 다독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러나 무조건 많이 읽기보다는 계통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가급적 유익한 책을 읽어야 한다. 유익한 책은 역사의 시련을 거치며 살아 남은 책이다. 고전은 결코 낡아 못쓰게 되는 일이 없이 언제나 새롭고 싱싱한 면을 지니고 있다. 고전을 사랑하지 않는 참된 독서가는 없다. 또 가급적 원전을 읽어야 한다. 플라톤이나 칸트에 대한 천 가지의 문헌을 읽어도 원전을 읽지 않으면, 그것을 되풀이해 읽지 않으면 깊이 근본적으로 배울 수 없다.

때로는 번역본보다 원서 자체를 읽어야 하는 때도 있다. 원서를 읽으려면 어학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어학이라는 것도 결코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학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교양이다.

올바로 읽으려면 먼저 그 책을 스스로 소유해야 한다. 빌린 책이나 도서관 책에서는 근본적인 것을 조금도 배울 수 없다.

올바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천천히 읽어야 한다. 결코 급히 서둘러서는 안 된다. 그 책에서 배우기 위해서도, 그 책을 비평하기 위해서도, 그 책을 즐기기 위해서도 천천히 읽는 것이 중요하다. 천천히 읽는 것은 되풀이해 읽는 것과 같은 말이다. 정독은 자고 이래로 항상 독서의 규칙이었다.

독서는 사색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 아니, 오히려 독서 자체에 사색이 결부되어야 한다. 책을 다 믿으면 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고 옛사람은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저자가 대신 생각해주길 바라며 독서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위의 모든 말은,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책은 서문만 보아도 알 수 있고, 어떤 책은 빨리 읽을 필요가 있다. 계통적으로 읽어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계통 없이 남독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독서법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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