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황금시대
결국 공자는 다시 노나라로 돌아옵니다. 학원은 여전히 성업 중입니다. 공자가 잠깐 주나라에 가서 노자를 만난 건 이때의 일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 후로 공자 학원은 전성시대를 맞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제나 저제나 언제쯤 나를 써주는 이가 있을까 공자는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가버렸습니다. 속된 말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한다고 했는데, 공자의 경우가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공자 나이 51세, 초로의 나이에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벼슬을 얻게 됩니다. 일찍이 정치에 꿈을 둔 이래 19세 때 ‘위리’, 21세 때 ‘승전리’라는 말단 관리를 했던 것이 전부였던 그에게, 비록 늦었지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아마 눈물이 울컥 하지 않았을까요?

그에게 주어진 관직은 중도재|中都宰|. 중도라는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로, 오늘날 도지사나 시장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다만 노나라 수도인 곡부가 아니라 지방 도시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생활 방식과 장례 절차를 예에 맞게 정하고,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책임을 다르게 하고, 남녀가 같은 길로 다니게 하지 못하고, 길에 떨어진 물건이라도 함부로 줍지 못하게 하는 등의 정책을 폈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범이 되어 서쪽 지방 다른 제후도 따라했다고 합니다. 능력을 인정받은 공자는 1년 만에 토지와 민사를 맡아보는 사공|司空|으로 승진합니다. 여기서 또 인정을 받은 공자는 마침내 형벌을 맡은 최고 책임자, 오늘날 대법원장 겸 법무부 장관에 해당되는 사구|司寇|에 오르게 됩니다.
사구에 오르자 그는 드디어 맘속에 품었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우선은 삼환의 세력을 제거하고 임금을 중심으로 한 정권의 회복과 군사력의 통일을 꾀합니다. 삼환의 세 도성을 허물어버리려 합니다. 비록 마지막 한 성을 허물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왕권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재상의 일까지 겸하게 됩니다. 이 자리에 오르자마자 그는 노나라의 정치를 어지럽히는 소정묘라는 대부를 처형합니다. 노나라는 점차 안정을 찾아갑니다.
노나라가 힘이 강성해지자 이웃나라인 제나라는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공자를 제거할까 고민하다가, 내부 교란 술책을 쓰기로 작정합니다. 노나라 임금과 대부로부터 공자를 고립시키려는 계획입니다. 제나라는 그 나라에서 가장 예쁜 미녀 악사 80명을 뽑아 잘 치장한 말 120필을 노나라에 선물로 보냅니다. 요즘으로 치면 최고의 섹시 댄스 여가수 80명에 최고급 승용차 120대를 선물로 보낸 겁니다. 노나라 임금과 대부들은 이 섹시 댄스 가수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고급 승용차에 눈이 멀어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됩니다. 공자는 노나라에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노나라를 떠나게 됩니다. 공자의 나이 56세 때의 일입니다.
주유천하 14년
그 당시의 정황을 보면 순전히 공자가 자의로 떠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혁은 반동을 수반하는 법입니다. 공자의 개혁에 반감을 가진 세력, 특히 계씨 세력에 의해 공자가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것 같습니다. 공자로서도 자신의 고국인 노나라에서 그 이상을 펼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있었다가는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그를 알아주는 나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한 것입니다. 이렇게 고국을 떠난 공자가 다시 노나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나이는 69세, 자그마치 14년 동안 천하를 유랑한 것입니다.

천하라고 해봐야 당시 공자가 갈 수 있었던 주위 몇몇 나라에 불과했겠지만, 말처럼 쉬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온 나라가 전쟁 중이었던 춘추전국시대에, 현대로 말하자면 끝을 모르는 세계대전이 한창인 때에 공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와 나라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결코 늘그막에 한가하게 세계 유람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이상적인 정치를 펼쳐 보일 기회를 얻기 위해, 어느덧 그는 노령의 나이조차 잊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노나라의 기존 정치 세력과 대립하여 망명 아닌 망명을 떠났다고는 하지만,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열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고난의 여행이었습니다. 현실에 순응하고자 하는 나태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실 공자도 처음부터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릴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어딘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어, 그 나라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말해왔던 바를 실제로 구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모택동의 대장정|大長征|과도 같은 고난의 길일 줄이야.

우리는 공자와 <논어>를 이야기할 때 근엄한 공자의 모습만을 떠올립니다. 서당에 앉아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무슨 학교 같은 건물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합니다. 공자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그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자가 노령의 나이에 온갖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천하를 주유하던 이 시기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한없이 길게 할 수 없으니, 기회가 된다면 공자의 생애를 다룬 다른 책들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공자에 대한 섣부른 편견이 사라질 것입니다.
14년 간의 유랑 생활 – 실은 정치적 망명 생활을 끝내고 노나라로 돌아온 그 이듬해 공자의 외아들 잉어, 공리|孔鯉|가 죽습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공리의 아들 공급|孔伋|이 태어납니다. 공급이 곧 <중용|中庸|>을 지었다는 자사|子思|입니다.
다음 해에 공자가 그렇게 총애하던 애제자 안연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집니다. 아들이 죽고, 아들보다 더 애지중지했던 안연마저 죽었습니다. 이때 공자는 “아,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라며 통곡했습니다. 어찌나 심하게 울었던지 옆에 있던 제자들이 놀랄 정도였다고 합니다. 공자 나이 70세.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는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했던 그때입니다. 2년 후, 공자가 ‘저 녀석은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던 자로|子路|가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군자는 죽더라도 갓을 벗을 수 없다’며 비장하게 죽었습니다. 안연과 자로는 공자가 떠돌이 생활을 하던 14년 간 한 번도 떨어지지 않았던 유일한 제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죽자, 공자도 시름시름 앓더니 이듬해에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공자의 죽음은 예수의 부활도 아니고, 붓다의 열반도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 왔다가 보통 사람으로, 그렇게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논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