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06] 춘추전국시대

어젯밤, 월드컵 한국 대표팀의 평가전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부지런히들 뛰고 달리니 보는 이들도 모두 신명이 났습니다. 패기와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온나라가 월드컵에 열광하는 괴이한 현상을 경계할 필요도 있지만, 일상의 나른함을 붉은 색의 열정으로 떨쳐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중국 역사를 훑어보겠습니다. 앞으로 1~2회 정도 더 연재하면, 중국 역사 부분은 끝이나고, 공자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춘추전국시대의 도래

주나라는 약 280여 년 간 비교적 안정되게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정이 더 이상 지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사회의 변화를 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회 경제사적 의미입니다. 이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회가 변한 원인을 단순히 사람의 마음이나 심성에서 찾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위에서 핏줄을 중심으로 한 주나라 종법제도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주나라 중심의 봉건제가 춘추전국이라는 극심한 혼란기를 거쳐 진, 한 등으로 이어지는 통일 제국이 들어서는 데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 경제적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옛 역사책에는 주나라 유왕이 애첩 포사에게 푹 빠져서 정신을 못 차려서 제후들이 주나라에 등을 돌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라 걸왕, 상나라 주왕의 얘기와 너무 비슷합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제 지겹기까지 합니다. 포사는 성격도 좋지 않았나 봅니다. 예쁘긴 한데 웃지를 않습니다. 하도 웃질 않으니 유왕이 별별 수를 다 씁니다. 마침내는 위급할 때 이웃 나라 제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봉화에 불을 붙여 제후들이 헐레벌떡 뛰어 오게 만듭니다. 몇 번 장난을 치니 나중에 진짜 견융족이 침입해 왔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양치기가 거짓말을 자주 해서 나중에 늑대에게 모두 잡혀먹었다는 얘기와 비슷합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서 그런 것이지,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핵심은 중앙 정부가 위급한 상황인데도 제후들이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이미 제후들의 세력이 중앙 정부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커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자 때문에 정신 못 차렸던 왕 한 사람 때문에 생긴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전 왕조의 마지막 왕은 언제나 이렇게 인간 망종이나 말짜로 기록됩니다. 도가 지나치면 의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거나 유왕과 포사는 견융족에 의해 죽습니다. 유왕의 아들 평왕은 폐허가 된 도성을 버리고 동쪽의 낙읍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동쪽으로 옮겨 갔다고 해서 이때를 동주|東周| 시대라 부르고, 그 이전을 서주|西周| 시대라고 합니다. 동주 시대에는 아무도 주나라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작은집이 큰집을 완전히 무시하는 셈입니다. 속된 말로 콩가루 집안이 된 겁니다. 이 시기를 일러 춘추시대라고 합니다.

춘추시대는 농업 혁명기이기도 합니다. 이때가 청동기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갈 즈음인데, 철기가 농기구로도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철기와 우경의 발달로 제2의 농업 혁명이 일어납니다. 우경은 농사에 소를 이용한 것을 말합니다. 소는 사람보다 힘이 세서 땅을 보다 깊게 팔 수 있었습니다. 땅을 깊게 파는 것을 심경이라 하는데, 양분을 섞고 땅을 부드럽게 하여 나쁜 땅을 개량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제1의 혁명은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접어들면서 수렵에서 농업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우경과 심경으로 생산량은 늘어납니다. 제후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고 중앙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게 귀찮아졌을 것입니다.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미 주나라가 건국된 지 300년 가까이 되면서 혈연으로 맺어지긴 했지만 섞인 피의 농도가 묽어진 것 같습니다. 천자의 눈치 보는 게 귀찮아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무시해 버리고 오히려 천자 자체를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이 시기를 전국시대라고 합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 그대로 전쟁이 그칠 날이 없던 때를 말합니다. 일본에서도 전국시대가 있었습니다. 천황을 중심으로 공경|公卿|들이 정사를 보던 조정의 실권이 시대가 흐르면서 점차 약해지고 무사, 즉 사무라이들에 의한 권력 투쟁이 빈번했던 시기를 일컫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귀에 익은 이름들이 활동하던 때입니다. 절정에 달했던 때가 1,500년 대 후반입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오래 전인, 기원 전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기원 전, 예수가 태어나기 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서에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가르는 기준은, 제후국 중의 하나인 진|晉|나라(훗날 중국을 통일하는 진시황의 진|秦|이 아님)의 3대 가문인 한씨, 위씨, 조씨가 나라를 나눠 각각 한, 위, 조나라를 세울 때부터를 말합니다. 그러나 사회 경제사적으로 볼 때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뚜렷이 나눌 기준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묶어서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춘추시대에 잘 나가던 다섯 제후를 춘추오패|春秋五覇|, 전국시대에 잘 나가던 일곱 나라를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고 합니다. 이 전국칠웅 중의 하나인 진|秦|나라가 중국 전역을 통일하기까지 무려 550년 동안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공자가 죽고도 250년이나 후의 이야기입니다. 공자가 살던 시기는 중국 전역이 교전 지역이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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