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주위 몇몇 사람으로부터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제가 김훈의 에세이집 《자전거여행》에 대해 리뷰한 것을 보고, 김훈의 진면목을 보려면 《칼의 노래》를 꼭 읽어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찬사가 무색하지 않을만큼, 감동과 재미가 있었습니다. 소설 읽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제게 김훈의 다른 소설마저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들만큼 강력함이 있습니다.
제 목 : 칼의 노래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지은이 : 김훈
펴낸곳 : 생각의 나무 (초판 출간일 2001.10)
소설은 정유년 4월 초하룻날 이순신이 서울 의금부에서 풀려나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무술년 11월, 노량 앞바다에서 최후를 맞는 장면에서 끝납니다.이 소설이 발표되기 1년 전(맞나?) 김훈은 자신의 에세이집 《자전거여행》 중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라는 꼭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이순신의 내면은 무겁게 짓눌려 있고 삼엄하게 통제되어 있다. 그는 이 통제된 내면의 힘으로 무수한 아수라를 돌파한다. 《난중일기》와 그가 조정으로 보낸 전황 보고서들은 무인다운 글쓰기의 전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정치적 불운에 목숨을 저당 잡힌 상태에서 전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난중일기》는 의주 피난 정부에서 벌어지는 이전투구의 정치 상황을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바다의 사실에만 입각해 있었다. 매일매일 바다 날씨의 미세한 변화를 그는 기록했다. 그는 늘 병고에 신음했고, 슬픔과 기쁨에 몸을 적시는 정한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나는 오늘 슬펐다”라고까지만 기록되는, 통제된 슬픔이었다. 그의 슬픔과 기쁨에는 수사적 장치가 없다. 이 통제된 슬픔의 힘이 “저녁 무렵에 동풍이 잠들고 날이 흐렸다. 부하 아무개가 거듭 군율을 범하기로 베었다” 같은 식의 놀라운 문장들을 쓰게 한다. 바람이 잠든 것과 부하를 죽인 일이 동등한 자격의 사실일 뿐이다. (《자전거여행》p.224~p.225)
그가 말한 이순신의 ‘통제된 슬픔’과 ‘놀라운 문장’을 칼의 노래에서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순신의 내면 세계를 이처럼 놀랍게 재현한 것에 감탄할 뿐입니다. 이순신의 순결함에 감동하고 김훈의 문장력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이 세계에서는 그토록 단순하고 자명한 일이 단순하지도 자명하지도 않았다.(p.261)”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인 무술년, 명과 일본 사이에 강화 협상이 진행된다는 소문을 듣고 난 뒤의 이순신의 마음입니다. 이순신의 순결함과 고귀함이, 정쟁으로 말미암아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이 먼 옛날의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소설 속의 이순신은 임금에 대한 충(忠)의 마음이 없습니다. 임금이 가엾고, 어리석으며, 심지어 은연중에 적으로까지 생각하는 장면이 보입니다. 일본과 명, 그리고 조정까지도 그의 눈에는 “벨 수 없는 전방위의 적”이고 “안개처럼 풀어진 무정형의 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김훈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매우 타당한 지적이라 할 것입니다.
- 이순신의 죽음이 ‘의도된 전사’였으며, ‘위장된 자살’이었다는 주장은 매우 신빙성 있는 정황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에게는 전후의 권력 재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적 여백이 없었다. 다케다 신겐이 허수아비를 앞세우고 통과해나간 아수라를 이순신은 자신의 죽음으로 정리했다.(《자전거여행》p.225)
여러 말 필요없이,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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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다신겐은 일본 영화 카게무샤의 주인공이자 일본의 소문난 무략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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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이 책으로 2001년 동인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단편 소설 〈화장(火葬)〉으로 이상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