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그림으로 이해하는 현대사상》을 읽고 재미가 있어, 관련된 시리즈를 모두 구매했습니다. 《… 경제사상》, 《… 정치사상》, 《… 우주과학사》 등입니다. 그 중 경제사상 편을 먼저 읽었습니다.
제 목 : 그림으로 이해하는 경제사상
지은이 : 홍은주
펴낸곳 : 개마고원 (초판 출간일 2006.1.17 / 2006.11.15 개정판 1쇄를 읽음) ₩10,000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책, 참 괜찮습니다. 이렇게 느낀 데에는 저의 경제학적 지식이 일천했던 것이 큰 요인인 듯합니다. 로크, 아담 스미스로부터 얼마 전 소개드렸던 《행동경제학》에서 자주 인용하고 있는 나이트, 사이먼, 카너먼과 트베르스키에 이르기까지 42명 경제학자들의 57개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일반인에 눈높이를 맞춘 저자의 능력이 돋보입니다.
살다보면 철학보다 경제학이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라 더욱 그러한지 모르겠습니다. 경제학에도 추상적인 개념이 있긴 하지만 철학에 비하자면 매우 현실적입니다. 세속적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전에 소개드렸던 《… 현대사상》보다는 한결 쉽게 이해됩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것입니다.
《… 현대사상》과 《… 경제사상》은 수많은 개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개념들을 훑고 지나가다보면 옅으나마 역사가 보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사상적 측면과 경제학적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 사상사이고 경제사입니다. 오늘 이 책은 가볍게 경제사를 훑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입니다. 경제학적 지식을 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현실을 해석하고 현실 속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얇은 책 한 권을 두고 너무 과한 평가가 아니냐, 너무 나간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책이 그러하듯, 책은 읽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제겐 매우 유익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데이비드의 ‘경로의존성’을 읽으며 지식과 상식을 넓어지는 것을 느꼈고, 나이트의 ‘불확실성’을 보며 회사에서 내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1. 경로 의존성
백원짜리 동전을 보면 주위에 톱니바퀴처럼 미세하게 홈이 파여있습니다. 그리고 앞뒷면에 그림과 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금 본위 시대의 유물입니다. 금화나 은화가 거래 수단으로 쓰였던 시대에는 동전에 포함된 금과 은의 함량이 동전의 가치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금화나 은화의 주변을 미세하게 깎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도둑질이죠. 처음에 50그램짜리가 나중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48그램, 45그램이 된 거죠. 이러다보니 원래 함량을 꽉 채운 동전은 장롱 속에 모셔두고 주변이 깎여 함량이 줄어든 돈만 유통되게 된 겁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쫓아낸다)’는 말이 생기게 된 현상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화나 은화의 앞뒷면에 그림을 넣고 주위에 홈을 내어 누군가가 동전을 조금만 훼손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금 본위제가 사라져 동전 속의 금 은 함량이 동전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데도 옛날 방식 대로 여전히 그림과 홈을 파넣은 것입니다.
이를 스탠퍼드대학의 데이비드 교수는 ‘경로의존성’이라 명명했습니다. 나중에 그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명되어도 사회 전체가 비효율의 덫에 걸리게 되는 현상을 설명한 것입니다.
현재의 영문 자판인 쿼티(QWERTY) 자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쿼티 자판은 타자 치는 속도를 느리게 만들기 위해 고안한 자판입니다. 타자기 기술이 덜 발달되었을 때 타이핑 속도가 빠른 타자수가 타자를 칠 때 글자가 서로 엉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타자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느리게 한 자 한 자 치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어렵고 비효율적으로 자판을 배열한 것입니다. 이 비효율적인 자판 배열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절대로 글자가 엉킬 일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전 세계 인류가 앞으로도 영원히 비효율적인 자판에 ‘감금’되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2. 불확실성
나이트(1885~1872)에 따르면 불확실성에는 측정 가능한 불확실성과 측정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있는데, 예측이 가능하고 확률분포가 알려진 불확실성은 불확실성이라기보다는 관리 가능한 위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예측 가능한 불확실성은 언제든지 보험 등을 통해 확실한 것으로 바꿀 수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위험이 아니라 생산 비용의 일부로 보아야 합니다.
측정 불가능한 불확실성이야말로 진정한 위험이며 이것이 이윤을 발생시키는 원천이라는 것이 나이트의 주장입니다. 측정 불가능한 불확실성은 실제 일을 해보기 전에는 확률적인 분포를 알 수 없으며 따라서 보험으로 위험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이를 기업 차원으로 옮기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업에는 조직이나 경영자가 필요 없고 오로지 프로세스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물리적으로 조정하는 관리자만 필요할 뿐입니다. 지식이나 완벽한 정보가 없는 상테에서는 단순한 프로세스 관리보다는 어떻게 생산을 조직하고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사전적 의사결정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기업 내 관리자들은 판단력 적응력 예측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며,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조건으로 남들보다 많은 임금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나이트에 따르면 기업이나 임금제도는 불확실성의 직접적인 결과인 것입니다.
불확실성 속을 살고 있는 내가 회사에서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