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맹자 하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들 윤리나 사회책에서 본 것 외에 아는 바도 없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래서 이참에 몇 권 읽어보기로 하고, 마침 책세상 문고 – 고전의 세계 시리즈 중에 맹자와 순자가 있어, 샀다. 오늘은 그 첫 번째, 맹자에 대한 얘기다.
제 목 : 맹자
시리즈 : 책세상 문고 – 고전의 세계 20
지은이 : 맹가 / 안외순 옮김
펴낸곳 : 책세상 (초판 출간일 2002.9.30 | 초판 1쇄를 읽음) ₩5,900
맹자의 본명은 맹가(孟軻)다. 子는 그의 제자들이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붙인 ‘선생님’이란 뜻의 존칭을 나타내는 글자다. 맹자의 후배 순황(旬況)이나 주희(朱熹)가 순자나 주자로 잘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이 책은 《맹자》 열 네 편 가운데 〈양혜왕〉〈공손추〉〈만장〉〈진심〉 각 상·하 여덟 편을 번역하였다. 따라서 나머지 세 편인 〈등문〉〈이루〉〈고자〉편은 생략되었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자면 “《맹자》의 핵심 메시지가 왕도정치론에 있고 위의 여덟 편이 특히 왕도정치의 개요, 성립, 전개양상, 변동원리 등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개진하고 있다고 판단”되어 선택했다고 한다.
고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지만, 읽기에 그리 어려움이 없다. 문맥을 보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 옮긴이가 덧붙여 놓은 설명이 문장을 한결 매끄럽게 한다.
고리타분하다 못해 썩어 쉰내 날 수도 있는 2,300여년 전의 이야기를 아직도 ‘다시 읽기’하는 이유는, 이 책을 읽어보면서 쉽게 알 수 있었다. 맹자가 살아가던 시기가 비록 패권쟁탈과 패도정치가 판치는 전국시대이기는 했으나, 그리고 당대에 이미 그의 명성이 높기는 했으나, 왕 앞에서 “군주에게 큰 과오가 있으면 간하고, 반복해서 간해도 군주께서 듣지 않으면 군주의 자리를 바꿉니다.”라고 말하는, 이 간 큰 사내의 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왕도정치, 성선설, 오륜, 오십보백보라는 ‘단어’ 등이 내가 아는 맹자의 전부였으나, 이 말이 담고 있는 큰 뜻은 미처 알지 못했다.
제 선왕이 물었다.
“탕 임금이 걸을 유배 조치하고, 무왕이 주(紂)를 벌했는데, 그렇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전하는 책에 나와 있습니다.”
“신하가 자기 군주를 시해해도 됩니까?”
“인을 해치는 자를 ‘도적(賊)’이라 이르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악(殘)하다’고 합니다. 잔악하고 도적 같은 사람을 ‘일개 필부’라 하는데, ‘일개 필부 주의 목을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양혜왕 하 8절)
위의 얘기는 제나라 선왕과의 대화 내용인데, 한자문화권에 전제군주제가 강화되면서부터 《맹자》가 장구한 세월 동안 금서로 취급당한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할 때도 맹자의 첫 마디는 ‘천하의 왕 노릇을 하는 것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이런 말도 했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진심〉하편,14절)
이 얇은 책을 통해, 고전이 의외로 재밌다는 생각을 가졌다.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데 꽤 도움이 되었다^^
얇고 작아 출퇴근 길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으며,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니, 아직 고전 한 편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 꼭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성선설을 말하면서 자주 인용되는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에 대해 언급한 문장을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칠까한다.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 선왕들은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정치를 펼쳤다.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으로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정치를 펼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이는 것과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게 되면 누구나 깜짝 놀라 측은한 마음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동네사람들과 붕우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외면했을 경우) 잔인하다는 오명을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겸양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요, 수요지심은 의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다. (〈공손추 상〉 5절)
*
다시 보니 꼭 옮기고 싶은 문장이 더 있다.
맹자가 말했다.
“공자께서 ‘중도의 인물을 얻어 함께할 수 없다면 차라리 광견한 자와 함께하리라! ‘광(狂)’한 자는 진취적이고, ‘견(獧)’한 자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공자께서 중도의 인물을 얻고 싶지 않으셨겠는가마는, 반드시 그런 사람을 얻을 수 없기에 차선의 인물을 생각하신 것이다.”(〈진심〉하편,3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