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0년 8월 17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아이를 키우며 부모도 함께 커야
나의 주된 관심 대상은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니다. 이 칼럼의 일관된 주제 역시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법에 있지 않다. 공부는 아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차피 해야 할 과제이다. 어차피 하는 것이니 잘하는 것이 좋기는 하겠지만, 잘하는 데만 목적을 두면 마음이 황폐해진다. 잘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적이어서 나도 잘하고 너도 잘하면, 나는 더 잘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비교하고 경쟁하다보면 아이도 어른도 마음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나의 관심사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공부하는 데 있다. 부모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자녀의 행복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이 아이가 행복해지기 위한 자격증처럼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은 공부 못하는 자의 변명이 아니다. 학교 성적과 행복의 연관 관계가 크지 않음을 밝힌 연구 결과도 있다. 공부와 행복이 무관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성적이 아니라 성격, 가치관, 긍정성, 성실성 등 공부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여러 요인들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녀가 진정으로 행복하길 원한다면 초중고 시기 최소한 12년을 공부하는 동안 행복해지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초중고 12년은 우리 아이의 성격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이다. 지금처럼 공부하다가는 늘 상대와 비교하고 상대보다 우월함을 느낄 때만 자신감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성적이 상위 1%가 될 확률은 1%이다. 1%가 되지 못해 불행하다면 99%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남을 이겨서 생기는 자신감은 우월함이 유지될 때만 가능하다. 이런 자신감은 위태하다. 12년의 일과는 공부를 중심으로 짜여 있으며, 이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지 못한 사람이 사회에 나가 행복하게 살기 어렵다. 학령기 자녀를 둔 학부모는 아이의 공부가 행복하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다. 경쟁에서 이길 때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며 세상 사는 법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이의 행복을 도우려면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이 말은 그리 새롭지 않다. 그래서 부모들이 흘려듣기 쉽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현실이 어찌 그러하냐는 의심을 한다. 부모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는 말을 아이에 대한 관심을 거두라는 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말로 오해하기도 한다. 아이에 대한 관심을 ‘접는’ 것과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것은 전혀 다르다. 부모가 진정 행복해지려면 아이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기울이되, 아이의 행동으로 인해 부모의 마음이 괴로워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의 자기수양에 다름 아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부모도 함께 크고, 어리석은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분노를 키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의 내면을 키울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지만 그 반대일 때가 많다. 자녀를 키우다보면 이 아이가 우리 부부만의 아이가 아님을 느낄 때가 있다. 아이를 통해 희로애락을 경험하고 인생을 배우라고 누군가가 우리 부부에게 맡겨 놓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혜로운 부모는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통해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어리석은 부모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지만 끝내 쓸쓸하다.
행복하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택에 후회가 없기 위해서는 선택하기 전에 미리 그 선택의 영향을 미리 예측해야 한다. 행동이 굼뜬 아이, 공부를 즐겨 하지 않는 아이, 성적이 떨어진 아이를 향해 화를 내는 건 아주 쉬운 방법이다. 혼을 내고 벌을 줘서 행동을 고치려는 것은 매우 쉬운 방법이며, 노력 없이 거저 부모가 되려는 심보이다. 자신은 쉬운 방법으로 부모가 되려 하면서 아이에게는 성실성, 계획성, 사고력과 예의를 요구하는 수준 낮은 부모임을 자각해야 한다. 못된 심보, 수준 낮은 부모라는 거친 표현을 한 것은 부모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자괴감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며 스스로 발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이를 향한 노력이 허망한 결과로 돌아오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행동이 속상하여 내뱉은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라는 푸념이, ‘누가 엄마더러 그렇게 고생하라고 시켰어? 엄마가 원해서 그런 거잖아.’라는 말로 되돌아온 사례를 너무나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