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모 마음 읽기]스스로 계획 짜는 자녀, 격려해주길
손병목| 학부모 포털 부모2.0(www.bumo2.com) 대표ㅣ경향신문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유아와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를 주로 상담하지만 간혹 중·고생 부모가 상담을 요청할 때가 있다. 기훈이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며, 기훈이 엄마는 예전에 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강의에서 나는, 수학 성적이 형편없다면 비록 중학생이라도 초등학교 과정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했다. 기훈이 엄마도 그 말에 심정적으로 공감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하여 기훈이를 여전히 학원에 보내고 있었다. 오직 수학학원 하나만 다니면서 노력했지만 여전히 성적이 50점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과목에 대한 기초가 없는 아이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이를 알지만, 기훈이 엄마처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선행’을 하고 있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도를 의도적으로 먼저 나가는 선행학습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도리어 화가 된다. 학원 학습에 대한 잘못된 상식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여러 차례 다룰 예정이지만, 오늘은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학원은 어떤 의미인지만 짚고 넘어가려 한다.
인기 드라마 <공부의 신>의 원작격인 일본 드라마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최하위권 성적의 아이들로 이루어진 도쿄대 진학반이 합숙훈련에 돌입한다. 목표는 닷새 후의 수학시험에서 만점받는 것이다. 그런데 첫날 과제는 초등학교 산수 문제를 싫증나도록 푸는 것이다. 한 학생이 ‘이번 시험은 고등학교 수학이라고요!’라고 항의하니까, 선생님은 ‘초등학교 산수도 못하는데 고등학교 수학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니?’라고 면박을 준다. 정답이다.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는 학생과 그 부모는 여기서부터 오류를 범한다. 마음이 급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급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 송나라 때 어느 농부가 제 밭의 싹이 다른 밭의 싹보다 느리게 자라는 걸 보고 속상해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싹이 자라는 것을 돕기 위해 싹을 조금씩 땅 위로 잡아 올려주었다. 그러고는 뿌듯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 자랑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그 싹은 다 말라죽어 있었다. 도와서 자라게 한다는 뜻의 조장(助長)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학원 수업은 스포츠 관람과 같다. 학원 수업을 아무리 들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건, 월드컵 경기를 아무리 열정적으로 관람해도 자신의 축구 실력이 늘지 않는 것과 같다. 동네 축구 실력밖에 없는데 프리미어 리그를 본다고 박지성이 되지 않듯이 잘 가르치는 강사 밑에서 몇 년을 구경해도 실력은 늘지 않는다. 모든 학원은 상위권에 맞춰 수업을 진행한다. 하위권에 맞춘 학원은 ‘수준 낮은’ 학원으로 알려져 자연 도태된다. 공부 못하는 아이일수록 학원은 피해야 한다. 수업을 정신없이 구경하고도 열심히 공부했다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노력해도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는 무력감이다. 무력감에서 탈출하려면 가장 먼저 학원부터 끊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족한 부분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처음부터 스스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하는 것이 수치심과 패배감이다. 동생들이 보는 수준의 책을 다시 봐야 하는 수치심, 해도 안 될 것 같은 오래된 패배감에서 탈출해야 한다. 혼자서는 어렵다.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
단언컨대 중학생이라면 초등수학은 혼자서 하더라도 반년이면 완성할 수 있다. 문제는,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도 힘들지만,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 역시 답답하고 불안하다. 계획대로 해도 남들보다 한참 늦는데, 계획을 세워놓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아이가 실망스럽다. “네가 그렇지 뭐, 계획을 세우면 뭘 하나?” 절대로 빈정대거나 비난하지 말자. 아이는 이미 많은 상처를 입었다. 엄마의 한 마디가 아이의 마음속 병을 불치병으로 만들 수 있다. 패배감을 치료하는 데는 ‘공감’만한 것이 없다. “힘든가 보구나. 그래도 네가 스스로 계획을 세워 실천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엄마로부터 충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 아이는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 실천이 누적돼야 작은 성취감이 생기고, 성취감의 누적이 곧 자신감이다. 공부의 아픈 추억은 그렇게 극복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