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목 | 학부모 포털 부모2.0(www.bumo2.com)대표ㅣ경향신문 2010.01.05.화 교육섹션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상담
한솔이 부모는 둘 다 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한솔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고 연년생 동생이 있다. 한솔이 부모는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어서 자녀 교육만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자녀를 가르치는 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흔한 100점 한 번 못 받아 온다고, 명색이 학원 강사인데 아무리 가르쳐도 100점이 안 나온다며 시험을 치를 때마다 전쟁을 치르곤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하고 힘들다는 내용의 상담을 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아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지나친 노력은 엄마도 아이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시험에서 100점을 못 받더라도 70~90점 사이를 오락가락하면 지극히 정상이다. 초등학교 1, 2학년이면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하는 나이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다. 우리 딸도 아직 저 정도의 성적에 머물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성적 때문에 걱정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자신이 있다. 직업 때문에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십수 년 동안 보아왔다. 그 결과 초등학교 때의 성적이 끝까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공부실력은 결국 중·후반기에 드러난다는 것, 초등학교 때는 성적보다 공부 습관을 들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늦게라도 공부 흥미를 발견한 아이는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뒤늦게 공부에 흥미를 잃은 아이는 그동안 해왔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중요한 것은 당장의 성적이 아니라 공부에 대한 인식이다. 공부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호의적으로 바뀌어 가느냐, 아니면 점점 싫어지느냐가 훗날 공부의 성패를 결정짓는다.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에 대한 흥미를 꾸준하게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뿐이다. 늘 100점 받는 아이가 나중에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 그런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자기가 약한 부분을 노력해가며 극복할 수 있는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성공할 수 있다. 매우 평범한 진리인데도, 부모는 너무 가까이서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이런 평범한 사실들을 곧잘 잊곤 한다.
한솔이 엄마처럼 직업이 강사인 부모의 조급증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원 수강생을 가르치는 것과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학원은 일정한 기한 내에 성적을 올려야 하는 의무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성적을 끌어 올려주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성적에 별 변화가 없으면 언제 학원 수강을 중지할지 모르므로 강사나 원장은 성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엄마표’를 실천하는 많은 부모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까 고민하고,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기대만큼 되지 않아 힘들어 하고 있다.
그러나 공부는 결국 ‘아이’가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엄마가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자녀 학습 지도의 근본원칙은,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들도 이 말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확실한 기초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기초를 잡으려다 아이까지 잡는다는 것이다.
자녀를 너무 사랑하다보면 집착이 되고, 너무 잘 가르치려다보면 조급하게 된다. 엄마표의 핵심은 잘 가르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동안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공부가 즐거워지는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간혹 ‘너무 이상적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엄마표로 성공한 거의 모든 분들이 이런 원칙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들 말마따나 현실적인 것을 좇거나 당장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에 연연하다보니, 공부 잡는 엄마표가 아니라 아이 잡는 엄마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 코너를 통해 제대로 된 엄마표를 실천하는 방법, 그리하여 우리 아이가 공부습관을 잡는 데 제대로 도와주는 방법들을 알아볼 것이다.
![경향신문 2010년 01월 05일 교육섹션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상담] 경향신문 2010년 01월 05일 교육섹션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상담]](https://sonlab.mycafe24.com/wp/wp-content/uploads/2010/01/01_20100105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