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 없이 책 읽어주기

경향신문 2010년 9월 7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문] 책 읽어주기의 힘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로 만들기 위한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자녀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요 부모가 책 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 다음이다. 거실을 서재로 바꾸는 것도 좋지만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다. 이번 주에는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고, 다음 주에는 책을 효과적으로 읽어주는 방법에 대해 차례대로 다룰 예정이다.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 드리면 부모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책 읽어주는 시기이다. 언제까지 읽어주느냐고 묻는다. 나는 되묻는다. 언제까지 읽어주는 게 좋을 것 같으냐고.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읽어준다거나 길어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읽어주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읽어줄 수 있다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라도 계속 읽어주라고 말한다. ‘읽어줄 수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은 억지로 읽어주면 역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순간 대부분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책 읽어주기가 좋다는 것을 알겠지만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읽어준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는 표정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처음 이유는 아이가 글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가 모든 글자를 알게 되면 책을 스스로 읽기를 바라며 읽어주기를 소홀히 하거나 멈추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글자를 모르기 때문에 책을 읽어준다는 이유는 타당하지만 책을 읽어줘야 하는 이유 중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책 읽어주기의 진정한 의미는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데 있다. 지난주에 말씀 드렸듯이 독서지도의 진정한 목적은 아이가 책 읽기를 즐기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러기에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책 읽어주기이다. 부모가 꾸준히 책을 읽어줄 때 아이는 자연스레 책이 좋아지고, 좋아함이 오래간다.

아이가 글자를 안다고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문장을 이해한다고 책 전체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읽기를 꺼리는 아이들 중에 상당수는 책을 읽어도 별다른 흥미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듣고 이해하는 능력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초등학교 때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누군가 읽어주는 것은 쉽게 이해하는 반면 혼자 읽을 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림이 많은 책도 혼자 읽기를 꺼리는 아이도 글자 수가 매우 많은 연작 시리즈를 엄마가 읽어주면 푹 빠진다. 쉽게 이해한다. 혼자 읽는 것보다 누군가 읽어주면 책이 훨씬 잘 이해가 되고 재미있다. 그래서 좋아진다. 이것이 책을 꾸준히 읽어줘야 하는 첫 번째 이유다.

어릴 때 책을 즐겨 읽지 않은 사람이 나이가 들었다고 갑자기 책 읽기가 수월해지지는 않는다.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책을 읽을 때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앞의 내용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감퇴해서 그런 게 아니다. 내용을 기억하며 읽는 훈련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내용을 기억하며 읽는 훈련에 앞서 해야 할 것이 내용을 기억하며 듣는 연습이다. 듣고 이해하는 것과 읽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능력이다. 듣기 능력이 훨씬 뛰어난 초등학교 시기에 듣고도 이해할 수 없는데 읽고서 이해할리 만무하다. 책 읽어주기는 아이의 듣기 능력을 키워준다. 엄마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집중하여 들은 아이는 자연스레 읽기 능력 또한 향상된다.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읽고 이해하는 능력의 기초다. 이것이 책을 꾸준히 읽어줘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책을 읽어줘야 하는 가장 중요한 까닭은 세 번째 이유인데, 책이 좋아지는 광고방송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책 읽는 환경이 매우 좋아졌다. 가정 형편이 나아져 과거만큼은 책이 귀하지 않다. 다른 지출은 줄이더라도 책만큼은 많이 사주려 노력들을 한다. 설사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더라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주위에 도서관이 많이 생겼다. 가족 수만큼 도서 대출증을 만들어 충분히 빌려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읽는 환경이 좋아진 데 비례하여 책 읽기를 방해하는 환경 역시 발달했다. TV와 컴퓨터 게임은 책 읽기를 심각하게 방해한다. 어릴 때부터 시작된 ‘공부’ 역시 책 읽기를 방해한다. 표면적인 환경은 좋아졌지만 실제로는 과거보다 책 읽기가 훨씬 더 힘든 환경이다.

TV를 보면 지나칠 정도로 광고방송이 많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분야일수록 광고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매시간, 거의 모든 채널과 매체를 통해 광고한다. 제품을 알리는 단순한 목적이 결코 아니다.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텐데 계속 광고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소비자로 하여금 좋아하게 만드는 데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 상품을 선택하게 만드는 데 있다. 아이들에게 책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면 책이 좋아지는 광고를 매일 해야 한다. 아이들은 집을 떠나면 책 읽기를 방해하는 광고에 시달린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아이들의 이야기 주제는 책이 아니다. 게임과 만화책, TV 프로그램 등 책보다 훨씬 흥미로운 주제가 많다. 아이들의 관심사에서 책은 점점 멀어지고, 엄마가 책 읽으라는 말은 잔소리로 느껴진다. 관심이 떠나가는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은 우리 제품이 좋으니 일단 사고 보라는 형편없는 광고나 마찬가지다. 책이 좋아지도록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심 없이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독해력 향상, 사고력 향상, 이런 것 염두에 두지 말고 아이가 즐길 수 있도록 매일 20분, 책이 좋아지는 광고방송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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