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과 비전, 자녀교육의 원칙

경향신문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문] 원칙을 발견하는 두 가지 방법

학부모 대상의 강연회 때마다 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습관을 들이는 데 힘쓰라고 당부한다. 학부모들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후 나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 드린다.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20분 읽어주기’,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구주어식’ 지도법(본지 4월27일 칼럼), 자기 주도 학습의 시작인 ‘예습복습’(지난 주 칼럼)을 꼭 실천하라 말한다. 그러나 이런 습관은 단기간에 이룰 수 없다. 장기적인 실천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이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다. 습관이 형성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부모는 참지 못하고 곧잘 화를 내게 된다. 엄마표 학습 지도의 90%는 화 때문에 실패한다. 이 부분 역시 모든 부모가 동감한다.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까닭은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의 학습 진도나 능력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처질 때 불안감을 느끼고, 그 불안감이 조급함을 유발한다. 불안감은 확신이 없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지내보면 알겠지만 실은 초등학교 때가 가장 여유로울 때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도 늦지 않은 때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벌써부터 조급하다. 지금 처지면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것처럼 느낀다. 그 마음 때문에 아이들에게 속도를 강요하게 되고, 공부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 습관 등 근본을 다듬어야 할 시기를 번번이 놓치게 된다.

어릴 때는 충분히 뛰어 놀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열심히 노는 걸 보면 불안하다. 벌써부터 숨 막힐 정도로 공부를 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성적이 좋지 않으면 불안하고 화가 난다. 이것이 자기기만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으로 인해 불행하다면, 이것은 자기를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충분히 놀게 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성적은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자기 확신, 곧 원칙이다.

오늘은 자녀교육의 원칙을 발견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을 알아본다. 먼저 빈 공책을 한 권 준비한다. 여기에 자신의 비문(碑文)을 적는다. 나의 비문을 스스로 적기 위해 미리 죽음을 상상한다. 언젠가 나는 자녀들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내가 죽은 후 나의 무덤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그 아이들이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할지 상상해 본다. ‘어떤 엄마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이것이 오늘 비문의 주제다. 수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도대체 어떤 엄마로 기억되길 바라는 것일까, 가끔은 생각해봤지만 일상생활에서 늘 잊고 살았던 질문이다. 그랬기에 늘 갈팡질팡했으며, 그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화를 내고 나면 오히려 부모 마음이 더 안 좋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아프다. 내가 바라는 부모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자신에 대한 분노이다. 그것이 때때로 우울하기도 하다.

늘 화만 내셨던 분, 내 마음을 몰라주셨던 분, 무관심하셨던 분,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셨던 분, 나의 생각을 듣기보다는 당신의 주장만 강했던 분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엄마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엄마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너무 길지 않게 써보자. 가능하면 단 한 줄로 써보자. ‘마음이 따뜻하셨던 분’, ‘나의 말을 기쁜 소식처럼 들어주셨던 분’, ‘행복하셨던 분’, ‘화 내지 않고도 사랑할 줄 아셨던 분’. 나의 아들 딸이 추억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모습을 써보자.

그 다음 줄에는 아이에 대한 비전을 써보자. 우리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원하는지, 그 미래상이 곧 비전이다. 학벌이나 직업을 쓰는 게 아니다. 행복한 사람, 긍정적인 사람, 적극적인 사람, 배려심이 많은 사람, 자신감이 넘치고 도전하는 사람과 같은 식으로 써보자. 이 란에 공부 잘하는 사람이라고 쓰는 부모는 없다. 공부 자체가 목적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확고한 철학이 없었기에 우리는 늘 공부 문제로 아이와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공부를 소홀히 하라는 말이 아니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지내는 동안 우리는 늘 마음속의 자신의 모습과 현재 모습의 불일치로 인해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비문과 자녀에 대한 비전(교육관)을 분명히 쓰되, 이를 100일간 꾸준히 써보자. 매일 같은 말을 쓸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뀔 수도 있다. 그렇게 쓰는 동안 자녀교육에 대한 원칙이 확고해진다. 그 글을 매일 한 번이라도 보고 다시 적는 사이에 스스로 확신이 들게끔 한다. 물론 그렇게 쓴다고 해서 나의 행동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화를 내지 말아야 할 때 화를 내기도 하고, 여전히 조급한 마음에 불안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큰 차이가 난다. 목적지를 향해가는 비행기가 100% 항로대로 이동하지는 않는다. 이상기류를 만나고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늘 정해진 항로를 조금씩 이탈하며 나아간다. 그래도 비행기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것은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목표가 있을 때 약간의 흔들림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비문과 아이에 대한 비전이 명확하다면, 일상의 흔들림도 결국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 조금 흔들리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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