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엄마표’만으로도 유창한 영어를? – 엄마표 성공 신화
2000년대 초반부터 알게 모르게 ‘엄마표’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신문에는 2001년경에 처음 등장했고,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 즈음하여 <잠수네 아이들의 소문난 영어 공부법>이 출간되었다. 온라인 교육 정보 사이트 ‘잠수네 커가는 아이들’ 이신애 대표가 직접 썼다. 잠수네 출신이지만 솔빛이네 엄마로 더 잘 알려진 이남수 씨도 책을 냈다. 이런 책들이 출간되면서 각종 ‘엄마표’ 서적들이 줄줄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엄마가, 심지어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엄마가 아이를 영어 영재로 길러냈다는 성공신화는 엄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흔한 해외 연수 한 번 보내지 않고 영어 영재로 키운 것은 기적이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관련 서적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를 따라 하려는 부모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엄마표’라는 말은 엄마가 직접 지도한다는 의미를 넘어, 엄마가 만드는 음식이나 물건에 이르기까지 두루두루 안 쓰이는 곳이 없게 되었다.
현실이 이러하여 국립국어원은2004년 신어(新語) 자료집에 ‘엄마표’라는 단어를 추가하였다. 국어사전에 공식 등록될 날도 머지않았다.
나는 엄마들에게 알파맘, 베타맘과 같은 딱지를 붙이는 것이 싫다. 이 땅의 엄마들은 알파맘도 아니고 베타맘도 아니다. 자녀 교육에 열정을 가지고 헌신하려 하지만 매일같이 고뇌하고 좌절하며, 울고 웃으며 매일을 아이와 엉켜 사는 현실의 엄마들이 있을 뿐이다.
강연 중에 어쩔 수 없이 ‘엄마표’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다. 엄마가 직접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에서 ‘엄마표’라는 말은 중립적이다. ‘부모표’라는 말을 쓰고 싶지만, 실제로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이 엄마들이다. 이 책에서도 ‘엄마표’라는 말을 즐겨 쓸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안 되지? 아이 잡는 엄마표
‘엄마표’는 이처럼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비싼 사교육비를 아낄 수 있고, 해외 연수를 보내지 않아도 되고, 엄마의 정성만 있다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아주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 평범한 학부모들에게 엄마표 성공 사례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불안에 떨고 있던 학부모들에게 둘도 없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영어에 이어 수학과 독서, 국어에 이르기까지 이제 엄마의 힘만으로도 모든 과목을 지도할 수 있도록 친절한 엄마표 학습 지도서가 줄줄이 출간되었다. 방황하던 엄마에게 나침반이 생겼다. 하고 싶어도 하는 방법을 몰라서 속만 태우던 시대는 끝이 났다. 서점에 가면 수많은 엄마표 지도서가 널려 있다. 매뉴얼이 생겼으니 이제 실천만 하면 된다.
영어는 듣기가 우선이라 했다. 그래서 날마다 영화 DVD나 애니메이션 테이프를 틀어줬다. 수학의 틀린 문제는 꼭 다시 풀고 넘어가라고 해서 매일 아이와 씨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릴 때부터 광범위한 독서 습관이라 하여 책 사는 것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그 마법의 지도방법이 우리 아이에게는 소용이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가 밉기까지 하다. 아이와 가까이 있을수록 지치고 화날 때가 더 많다.
‘책에는 분명 원어 비디오를 보여주면 좋아한다는데 우리 아이 표정은 왜 저러지?’
‘뭐야? 세 달이나 틀어줬는데 듣기 실력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잖아.’
‘이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 남들은 벌써 다음 학년 선행 들어가고 있는데… 이러다가 너무 뒤처지는 것 아닌가?’
빠릿빠릿하지 못한 아이가 실망스럽다. 슬슬 불안해진다. 선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아이와 티격태격하다 보니 아이와 사이도 멀어진 듯하다.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지만 아이에게는 독한 엄마로만 비쳐질 뿐이다. 기적의 엄마표 교육은 대개 이렇게 실패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이 잡는 엄마표’라는 말도 들린다.
많은 부모들이 엄마표 교육의 실체를 오해하고 있다. 마치 엄마표는 아이들의 학습 스케줄을 완벽하게 짜고 이에 맞춰 아이를 24시간 관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책을 꼼꼼히 참조하여 만든 영어, 수학, 독서 계획표에 맞춰 아이를 철저하게 관리 지도한다. 그래야 엄마표인 줄 알고 있다. 엄마가 직접 지도만 하면 엄마표인 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