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화는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
“친구들과 놀지 말고 공부 좀 해”, “엄마, 잔소리 좀 그만 해요”, “네 앞에서 내가 죽는 걸 봐야 정신을 차리겠니?” 그런 뒤 엄마가 실제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마치 소설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참으로 안타깝다. 나는 부모된 자로서 망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최악의 방법을 선택한 것에 대해 한없는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낀다. 이 사건은 공부의 의미, 사춘기 자녀 교육, 분노 조절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 칼럼을 통해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것보다 행복하게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기를 바랐다. 공부 그 자체보다 초중고 학창 시절에 공부하는 동안 형성된 성격과 태도, 습관이 아이의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본지 8월17일자). 자녀교육의 성패는 부모의 분노 조절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본지 2월16일자). 분노 조절이 어렵다면 ‘선택일기’를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했다(본지 5월18일자). 물론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분노 조절 능력 없이는 자녀 교육은 물론 부모 스스로의 삶에도 고통이 크다.
분노는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직접적인 화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뒷소리, 거짓말, 비난, 위선, 도둑질, 우울증, 칩거, 태만, 절망, 자기 파괴, 낮은 자존감, 강박관념, 강박행동, 복수심, 중독, 두려움, 자기학대, 가학, 통증과 질병, 정신 장애, 탈진, 순교(타인을 죄인으로 만들기), 자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어느 것 하나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가 일어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
우리는 화가 나면 주로 공격형, 수동형, 수동공격형으로 분노를 표현한다. 공격형은 당사자에게 직접 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비난하는 방식이다. 흔히 욱하는 성격의 부모, 뒤끝 없는 성격이라 자칭하는 부모들의 분노 표출 유형이다. 수동형은 당사자에게 직접 표현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 담아두거나 엉뚱한 대상에게 표현하는 유형이다. 자식 문제로 남편에게 화를 내거나, 남편 문제로 자식에게 화를 내는 것, 이도저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것, 음주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수동공격형은 당사자에게 직접 화를 내지는 않으나 보이지 않게 보복하는 유형이다. 두고 보자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 이럴 가능성이 높다.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뒷소리를 많이 하고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 이에 해당된다. 나의 분노 유형이 이 중에 해당된다면 분노를 건강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노력이 필요하다.
화를 조절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화는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어떤 순간에 마음속에 화가 일어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상대방에게 분출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내지 않는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아이에게는 화가 나지 않는데 우리 아이에게만 화가 난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화는 나의 선택이며, 나의 선택 없이는 그 누구도 나에게 화를 내게 할 수 없다.
“엄마, 잔소리 좀 하지 마세요”, “네가 잔소리 하게 만들었잖아. 엄마가 잔소리 좀 안 하게 만들어 봐”, 전형적인 ‘네 탓 화법’이다. ‘네 탓 화법’의 근원에는 나의 행동은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수동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화를 조절할 수 없을뿐더러 아이 역시 비슷한 사고를 배우게 된다. 주도적인 아이로 자라기 힘들다. 스티븐 코비 박사에 의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제1습관은 주도적인 행동에서 나오는데, 주도적인 행동의 근원에는 모든 행동은 내 선택의 결과라는 인식이 있다. ‘네 탓 화법’으로는 이런 인식이 자라기 힘들다.
기사를 보니 목숨을 끊은 엄마는 40대였고 아이는 사춘기 중학생이었다. 3,40대 부모와 사춘기 자녀의 조합은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가장 힘든 때일 수 있다. 부모로서 이제 겨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나 싶었는데, 십년 넘는 기간에 걸쳐 가까스로 육아에 익숙해지나 싶었는데, 아이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아이의 탄생을 기억하는 것은 오직 부모일 뿐 아이들은 부모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한다. 부모와의 첫 만남은 무의식에 기록되지만 두 번째 만남은 의식 속에 강하게 기억되는데, 두 번째 만남이 바로 사춘기이다. 십여 년의 양육기간 동안 아이 마음 공감하기, 마음 읽어주기가 능숙해졌다면 사춘기가 부모에게 큰 혼란을 주지는 않는다. 다소 대화가 줄어들고 반항하고 공부보다는 외모와 스타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으로 커진다는 것만 미리 알고 있으면 충분히 슬기롭게 소통할 수 있다. 사춘기 자녀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