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0년 9월 28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노력하는 아이로 키우는 ‘잘했다’ 바꿔쓰기
쉽게 포기하는 아이를 볼 때 엄마의 마음은 아프다. 머리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노력하지 않는 아이를 볼 때 엄마의 속은 타들어간다. 조금만 더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못하겠다고 손을 드니 답답할 뿐이다.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다. 우리는 늘 ‘잘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한 생각만 했지 언제 ‘노력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어떻게 하면 영어 잘하고 수학 잘하고 책 잘 읽고 학교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노력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1921년에 미국의 젊은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은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심리학 실험에 착수한다. 그는 캘리포니아 지역의 초등학생과 중학생 25만 명을 3차에 걸친 시험을 치르게 해 그 중에서 지능지수가 140에서 200에 이르는 1,470명의 학생을 선별했다. 이들은 대개 중산층 자녀들이었다. 그의 연구팀은 이 어린 천재집단의 일생을 추적하면서 교육 성과, 직업 변화, 승진 등의 정보를 꼼꼼히 기록했다. 심지어 그들에게 상급 학교 진학과 취업을 위한 추천서까지 써주면서 이들을 집중 관리 관찰하였다. 그렇게 그는 자그마치 반세기에 걸쳐 어린 천재를 연구를 하였다. 루이스 터먼은 이들의 사회적 성공을 기대했고 또한 확신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터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천재 집단 중 대법관 두 명, 지방법원 판사 두 명, 캘리포니아주 의원 한 명이 나왔지만 대다수는 공무원이었고, 그저 평범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타일공, 청소부 등 특별히 영재성이 필요하지 않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나라 중산층이 몰려 사는 지역에서 무작위로 1,500명 가량의 학생을 선정해 추적 관찰한다고 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린 천재 집단은 결국 다른 일반 사람들과 차이가 없었고,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시 함께 지능검사를 치렀지만 1,470명에 선별되지 않았던 아이들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둘이나 나왔다. 반세기에 걸친 연구 끝에 연구팀은 결국 결론을 내렸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주된 요소는 지능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재능에 따라 진로를 선택했고, 선택한 그 일에 노력을 집중하였다.”
선택한 그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을 위한 유일한 방법임이 이미 오래전에 증명되었지만 우린 여전히 ‘잘하는’ 아이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노력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간히 스치기는 하지만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일 만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아이는 부모의 칭찬을 먹고 산다는데, 그 칭찬이라는 것이 ‘잘했다’는 말을 빼면 대체 남는 게 무엇인가. 칭찬의 언어가 곧 부모의 교육철학일진대 ‘잘했다’는 말 외에 칭찬하는 단어가 없었다는 것은 아이에게 오직 잘하기만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
잘하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면 그것을 잘해내지 못할 때 아이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자존감 저하는 무기력과 직결된다. 잘해낼 수 없으니 처음부터 노력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보니 재미있을 것 같아 태권도장,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에 보내달라고 해놓고서는 금세 시들해져 포기하는 아이들이 있다. 배우지 않은 문제가 나오면 시도조차 하지 않고 넘어가는 아이들이 많다. 매일같이 잔소리를 들어도 10분이면 끝날 학습지를 3,40분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에게 인내심이 없다, 끈기가 없다, 공부하는 자세가 틀렸다고 비난하지 말고 노력하는 즐거움, 성취의 쾌감을 느끼도록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를 고민하자.
우선 칭찬 언어부터 바꿔보자. ‘잘했다’는 말을 버리자. 아이가 시험 점수를 좋게 나왔을 때 ‘잘했다’고 칭찬하지 말고, ‘정말 기분이 좋겠구나’라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자. ‘정말 신나겠구나’하며 아이의 내적 성취감을 한껏 고취해보자. 최상의 칭찬은 칭찬하지 않는 것이다. 칭찬은 다분히 평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부모가 평가하는 대신 충분히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자. 칭찬을 하려면 ‘정말 열심히 했구나’하는, 그동안의 노력에 대해 칭찬을 하자. 공감 언어와 노력에 대한 칭찬이 잘 버무려지면 그것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기쁘다. 이런 칭찬에 익숙해진 아이의 머릿속에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자라지 않는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 노력의 부족이라 여긴다. 물론 노력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는 잘했을 때의 공감과 노력에 대한 칭찬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력하는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한 일상의 노력에 대해서도 앞으로 차차 다룰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