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분노 조절력을 키우는 ‘선택일기’

경향신문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24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문] 부모의 분노조절 능력을 키우는 ‘선택일기’

시간관리가 안 되는 아이, 계획을 세울 줄도 모르고 세워도 실천하지 못하는 아이, 주의집중을 못하는 아이, 일을 시키면 꼭 한두 가지 빠뜨리는 아이, 감정 조절이 어려운 아이, 공부를 시작하기까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아이, 공부를 시작한 후 지나치게 산만한 아이, 융통성이 부족한 아이,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는지를 모르는 아이, 정리정돈이 안 되는 아이. 이상은 ‘실행기능’이 약한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아마 최소한 몇 가지는 바로 우리 아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번 주부터 몇 주에 걸쳐 우리 아이의 실행기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본다.

미리 말씀 드릴 것은, 한두 번의 충고나 지시로 실행기능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습관을 바로잡고, 취약한 능력을 개발하는 데는 지속적인 노력이 핵심이다. 그래서 실행기능을 높이는 방법과 더불어, 이러한 노력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도 함께 알아본다. 그러한 노력에도 몇몇 기능은 개선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강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대개 모든 능력을 골고루 개선할 수 있다. 감정조절 능력이 뛰어난 아이가 주의집중 능력이 강한 것처럼 각각의 능력은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사례를 다루기 전에 모든 사례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부터 짚고 넘어가자. 현명한 부모는 원칙에 주목한다. 원칙을 알면 적용하기가 쉽고 다른 상황에도 창의적으로 응용할 수 있다. 먼저 부모와 자녀의 강약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부모의 강점이 아이의 약점일 수 있고, 부모의 약점과 아이의 약점이 같을 수도 있다. 때론 부모가 약한 능력을 아이는 강점으로 가질 수도 있다. 부모와 아이가 공통적으로 약한 기능은 ‘나를 닮았구나’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함께 그 능력을 키워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나는 못하지만 너는 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아이를 설득하기 어렵다. 집안이 늘상 어지러운데 아이더러 책상 정리 제대로 하라고 해봐야 잘될 리 만무하다. 부모가 취약한 능력을 오히려 아이가 강점으로 가지고 있을 때는 대개 문제가 없다. 부모가 강한 능력이 아이가 취약할 때가 늘 문제인데, 아이의 실행기능이 떨어짐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부모 눈에 못마땅한 습관, 서투른 행동,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를 보며 계속 화가 난다면 아이를 탓하기 전에 나의 ‘분노조절’ 능력이 취약함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 분노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부모 밑에서 그 어떤 아이도 잠재능력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부모의 분노조절 능력을 키우면서, 아이의 행동 개선이 늦더라도 참고 기다리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일명 ‘선택일기’ 쓰기. 아무 공책이나 좋다. 예쁜 일기장이라면 더 좋다. 표지에 ‘선택일기’라고 쓰자. 여기에 오늘 하루 아이에게 화를 낸 상황을 기록한다.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났는지, 그래서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그때 아이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그런 말과 행동 대신 바람직한 말과 행동은 어떠한 것인지를 덧붙인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아이에게 화를 낸 상황을 가급적 모두 기록한다. 너무 많다면 대표적인 세 가지만 골라 써도 된다.

예전 TV 프로그램 중에 ‘인생극장’이라는 게 있었다. “그래, 결정했어!”라고 외치는 순간 화면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보인다. 그리고 각각의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가 만들어진다. 선택일기는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오늘 아이에게 화를 냈던 그 순간을 포착하여 객관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실행기능 중에 ‘초인지’ 능력이 발달된다.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향상된다. 초인지 능력이 발달되면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줄 알게 되어 자연스레 감정조절, 반응억제(분노조절), 융통성 등의 기능이 더불어 향상된다. 흔히 화가 나면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한다. 객관화가 안 된다는 뜻이고, 초인지 능력이 상실된 상태라는 말이다. 선택일기는 화를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 준다. 이를 반복적으로 실천하면 스스로 놀랄 정도로 화가 줄어든다. 딱 100일만 실천해보자. 모든 일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서툴다. 화를 낸 상황을 기록하기 민망하다. 부끄럽기도 하고,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막상 화 대신 적절한 말과 행동을 찾기가 마땅치 않을 때가 많다. ‘참았어야 한다’라고 쓰며 끝날 때도 있다. 그러나 일기 쓰기를 반복하면서 부모교육 관련서를 함께 읽는다면 나날이 표현력이 발전함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땐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머릿속에 그려진다. 반복되면 실전에서도 동일한 행동을 할 수 있다.

학부모들께 이런 방법을 일러드리면 어떤 분은 선택일기를 아이에게 쓰게 하면 어떻겠냐고 묻기도 한다. 그 방법도 좋기는 하겠지만, 부모가 먼저 실천한 후에 아이에게 적용해보라고 권한다. 아이를 바꾸기 전에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함을 침이 마르도록 말을 하건만, 그게 잘 안 들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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