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책 즐겨 읽어야 아이도 읽는다

경향신문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원고 원본] 책 읽으라는 말 대신 책 읽는 문화를

몇 년 전에 거실을 서재로 바꾸는 운동이 유행했다. 커다란 TV와 긴 소파로 상징되던 거실을 책장 가득 책이 꽂혀 있는 서재로 바꾼다는 발상이 신선했다. 거실을 서재로 꾸미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나 공감을 했고 뜻 있는 많은 부모들이 실천을 했다. 거실을 서재로 꾸미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녀의 독서 지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거실을 서재로 막상 바꾸었지만 아이들이 기대만큼 책 읽기를 즐겨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곧잘 듣는다.

거실을 서재로 만들었지만 정작 거실에 사람이 없다. TV가 옮겨간 안방에 옹기종기 모여 TV를 보고 있으니 그 큰 거실이 썰렁하다. 거실을 서재로 바꾸는 운동은 거실 인테리어를 바꾸는 운동이 아니다. 책 읽는 문화를 바꾸자는 것이었다.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고 아이들도 자연스레 책을 좋아하게 만들자는 취지였다. 서재에 사람이 없으면 서재가 아니다. 그냥 책 창고일 뿐이다. 책만 꽂혀 있는 서재는 비효율적인 공간 활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서재에 꼭 필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책 읽는 사람이다. 독서 지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 역시 책이 아니라 사람이다. 다름 아닌 부모의 역할이다.

독서 지도를 통해 독해력, 사고력, 글쓰기 능력, 문제해결력 등을 키우려는 부모들이 많다. 이러한 것을 독서 지도의 목적으로 두면 대개 실패한다. 책 읽기마저 과제처럼 인식하여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독해력과 사고력, 글쓰기 능력 등은 독서를 통해 얻는 부산물이지 독서 지도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독서 지도의 근본적인 목적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드는 데 있다. 부모가 굳이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좋아서 찾아 읽는 아이로 만드는 데 있다. 독서의 중요성을 깨달은 부모들은, 책 읽는 습관이야말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임을 알고 있다.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책을 많이 읽어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다. 가정의 책 읽기 문화가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학습 방법 중 단연 으뜸은 모방이기 때문이다. 모방이 잘 되려면 원본이 선명해야 한다. 부모의 행동이 원본이고 아이의 행동이 복사물이다. 부모가 책을 즐겨 읽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해봐야 별 효과가 없다. 달리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 그저 실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지 말자. TV만 안 봐도 시간은 충분하다. 그것이 싫다면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는 말을 하지 말자. 부끄럽다.

부모가 책을 즐겨 읽는다는 전제 하에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는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책 읽어주기만큼 아이들의 독서 흥미를 유발하는 것도 없다.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면 으레 이렇게 되묻는 분이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제 스스로 읽어야지 언제까지 읽어 주기만 하냐고.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아직 책 읽어주기의 진정한 의미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책 읽어주기는 글자를 몰라서 부모가 대신 읽어주는 낭독 서비스에 그치지 않는다. 책 읽어주기의 진정한 의미는 ‘함께하기’에 있다.

어렸을 때 책을 좋아하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책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책을 멀리하는 데 뜻밖에도 학교가 큰 역할을 한다. 학교에 모인 아이들의 관심사가 책인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대화 주제는 대개 놀이와 연관되어 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하는’ 동안 관심사가 책으로부터 멀어진다. 컴퓨터 게임, 스티커 모으기, 캐릭터 모으기, 새로 나온 만화, TV 프로그램 등이 주된 관심사가 된다. 읽은 책을 주제로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있다면 매우 독특한 경우다. 책 읽기보다 훨씬 흥미롭고 자극적인 것이 많으니 책 읽기가 후순위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의 관심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잡아줄 수 있는 것 역시 부모의 ‘함께하기’밖에 없다. 읽어주기의 핵심은 문자를 낭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읽으며 대화를 하는 데 있다. 함께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책이 좋아지도록 만드는 방법은 없다. 굳이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도 없다.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꾸준히 할애하는 것이 좋다. 하루 20분 정도라도 족하다. 다음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꾸준히 책을 읽어줘야 하는 또 다른 이유와 책을 효과적으로 읽어주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