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서는 ‘사용설명서’가 아니다

 

경향신문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경향신문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학부모 마음 읽기] 자녀교육서는 ‘사용설명서’가 아니다

손병목|학부모 포털 부모2.0(www.bumo2.com)대표ㅣ경향신문 2010년 1월 12일 (화) 22면 손병목의 학부모 마음 읽기

상담을 하다 보면 여러 부류의 학부모를 많이 만난다. 아이에게 공부하라고만 할 뿐 자신은 전혀 배우려는 자세가 안 된 부모도 있고, 자녀교육서를 열심히 읽고 관련 강좌도 부지런히 듣는 부모도 있다. 7살 재희 엄마는 열심히 배우는 부모다. 많은 자녀 교육서를 읽고 엄마표 성공 사례를 공부하며 아이에게 정성을 다해 가르친다. 그런데도 재희 엄마는 늘 불안하다. 책에 나오는 방법에 따라 해도 잘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늘 따라다닌다고 했다. 그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2000년대 중반부터 ‘엄마표’ 열풍이 불었다. 철수네 영어연수, 민지네 독서법, 가희맘의 자녀교육 식의 엄마표 성공 사례가 책과 신문,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다. 사교육의 효과를 의심하던 의식 있는 학부모들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하여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주위에서 그런 성공사례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오히려 재희 엄마처럼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 결과를 의심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엄마표를 실천하다가 자녀와 사이가 틀어지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예를 들어 엄마표 영어의 성공 사례를 읽고 그 책에서 추천하는 책과 비디오로 가르쳐도 아이가 도통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가 못마땅하면서 엄마 마음은 조급해진다. 이 시기에 이 정도는 해야 되는데, 지금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뒤처지게 될 텐데, 이런 두려움이 든다. 엄마의 의도를 몰라주는 아이에게 곧잘 화를 내기도 한다. 몇 번 시도하다 말고, 다른 책에서 추천하는 방법대로 공부해보지만 결국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지 못해 포기한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영어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하게 되고, 결국 학원에서도 흥미를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 엄마표를 어설프게 시도했다가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교훈을 얻고 남들이 하는 대로 학원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자녀교육서를 ‘사용설명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전제품 사용설명서처럼, 그대로 따라하면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사용설명서는 기계를 움직이게 할지는 몰라도 사람의 행동을 바꾸게 하지는 못한다. 행동이 바뀌려면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자녀교육은 자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녀교육서를 읽으며 구체적 도움을 얻고, 그렇지 못하면 자녀교육서를 읽어도 부담감과 불안함만 가중될 뿐이다.

지금이라도 예전에 읽었던 엄마표 성공 사례를 다시 보라. 누구는 하루 세 시간 이상 꾸준히 원어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 하고, 누구는 한글을 익히기 전이라도 영어책을 자연스럽게 읽어주라고 하고, 또 누구는 모국어를 완전히 터득하고 난 후에 영어를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반면 이렇게 엄마가 힘들이지 않고도 아이가 동네 영어학원에 잘 적응해 실력을 높이는 사례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성공의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책 속 주인공이 실제 행했던 구체적인 방법에 주목하는 동안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여 쉽게 지나쳤던 구절에 성공의 핵심이 담겨 있다. 영어 성공 사례 책에는 엄마의 영어 교육 철학이 먼저 소개되어 있다. 거기에는 한결같은 고민이 담겨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영어의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터득하면서 즐기게 할까 하는 것이다. 그들의 고민은 여기서 비롯되었고, 여기에 집중했다. 그 실험 결과가 여러 책에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들이 행했던 방법에 주목하기 전에 그들의 원칙과 확신에 주목하라. 1986년 아시안 게임 때 육상 3관왕을 했던 임춘애 선수는 라면을 먹고 뛰었지만 성공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어떤 라면을 먹었는지 묻지 않는다. 얼마 전 임춘애 선수는, 과거에 라면 먹고 뛰었다는 것은 기자들이 극적 효과를 위해 강조한 것이었을 뿐, 보양식을 즐겨 먹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임춘애 선수의 성공 비결은 라면이 아닌 보양식 때문인가? 우리는 혹시 자녀교육서를 이와 같이 읽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상담 때나 강연 때 가장 먼저 얘기한다. 제발 자녀교육서를 사용설명서처럼 읽지 말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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